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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남원 제일의 관광명소《광한루원》

想像 2011. 6. 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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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원은 근세 전기에 조영된 대표적인 정원으로 꼽히고 있는데 한국의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데 모체가 될 수 있을 만큼 질적으로 우수하고 통시대적 문학사에 나타난 정원양식을 표현하고 있어 전통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광한루원은 경북궁 경회루의 지원과 전남 담양군에 있는 양산보가 만든 소쇄원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광한루원 인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청허부란 현판이 새겨진 문을 지나면 넓은 광한루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완월정. 광한루원 남쪽편에 있는 수중 누각인 완월정은 조선시대에 조성한 광한루 정원에는 없었던 정자로 1960년대 남한루원을 관광지로 개발할  때 신축된 것이라 한다. 완월정은 그 이름의 유래가 옛 남원성 남문 문루인 완월루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며, 정자는 조선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정자나 누각의 모습과는 약간 다른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완월정은 달이 뜨는 방향인 동쪽을 향하고 있는 'ㅗ'형 2층 누각으로 앞면이 6칸이며, 그 중 2칸은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어며 돌출된 부분은 기둥은 연못속에 잠겨 있다. 비록 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래된 누각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달이 떠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북쪽으로는 기존의 광한루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완월정은 광한루와 달리 직접 올라가서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누각 2층에 올라가 보니 누워 오수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팔베게를 하고 오봇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도 있다.


완월정 2층 누각에서 내려다 본 광한루원의 풍경이다.


완월정을 지면 광한루원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광한루원은 동서 100m, 남북 59m에 이르는 정방형의 호수와 호수 속의 3개의 섬(삼신산), 그리고 서편에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로 구성되어 있다.

오작교(烏鵲橋)는 평교지만 교각의 형태가 원형으로된 홍예교로 직선적이고 평탄한 노면에 율동감을 주어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호수에 직녀가 베를 짤 때 베틀을 고이는 돌인 지기석을 넣고 견우가 은하수를 건널때 쓰는 배인 상한사를 뛰워 칠월 칠석의 전설의 은하수와 오작교를 상징한다.

 


오작교 위에서 물속을 보니 온통 잉어 천지이다.


광한루원의 핵심 누각인 광한루.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건설한 인간이 신선이 되고픈 이상향으로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자연과 어우러져 쉴 수 있도록 경치 좋은 곳에 지은 건물을 말한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 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연못에 비친 광한루의 모습은 선경이다.


광한루원 앞에는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있다.

 
광한루원 연못에는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이 있는데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어져 있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가 세워져 있다.


방장섬의 대나무 숲

 

방장정의 모습이다

 


영주섬의 영주각


광한루원의 연못은 정말 경북궁 경회루의 지원과 전남 담양군에 있는 양산보가 만든 소쇄원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답게 너무나 선경이다.


광한후원안에 있는 수백년된 버들나무 고목..


광한루원은 전통적인 한국의 미를 자랑하는 누원과 함께 서쪽에는 월매집, 민속놀이 등 테마공간도 꾸며져 있다. 아래사진은 월매집. 물론 실제 월매집은 아니고 춘향전에 나오는 월매집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월매집안에는 자그마한 연목과 함께 성춘향과 이몽룡 상이 있는데 바로 앞에 놓여 있는 항아리에 동전을 던져 정확히 넣을 경우 창이 나온다.


월매집옆에는 춘향전에 나오는 형틀, 그리고 민속놀이등을 직접 체험해 보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춘향이 옥중에서 목을 걸고 있었던 큰칼이라는 형틀이다. 길이가 약 150센티미터 정도 였다고 하니 옛날 키가 작았던 시절에 무겁고 커다란 나무틀을 목에 걸고는 움직이기는 커녕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용변을 보는 일도 불가능할 만큼 무시무시한 형틀이었다고 한다

춘향전하면 생각가는 그네..단오절 춘향이 그네 뛰는 장면이 연상되는 곳이다.

 
광한루원은 경북궁 경회루의 지원과 전남 담양군에 있는 양산보가 만든 소쇄원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이자 남원 제일의 관광명소로 손꼽을 수 있다. 그 만큼 남원 부근을 관광할 때 반드시 한번은 둘러봐야 할 관광 명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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