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리음악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 (Claudio Arrau, 1903 ~ 1991)

想像 2009. 5. 2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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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라우 [Claudio Arrau, 1903 ~ 1991]

클라우디오 아라우는 1903년 칠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피아노를 잘쳐서 그영향을 받았는지 3세가 되자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전에 벌써 베토벤의 소나타를 암보로 연주해내는 재능을 보인 신동이었다. 최초의 리사이틀은 5세 때였는데,모차르트,베토벤, 쇼팽을 연주했다고 한다. 6세때 산티아고 음악원에 입학, 1911년인 8세때 산티아고에서 정식으로 데뷔를 했다. 이것을 지켜본 칠레 정부는 아라우를 국비로 독일에 유학을 보내게 되고 아라우는 본격적으로 마르틴 그라우제에게 5년간 그 집에서 동거하면서 철저히 배웠다.

아라우는 크라우제 이후 아무에게도 사사하지 않고 주로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는 11세때에 베를린에서 데뷔를 했고,15세 이후부터는 독자적인 연주 활동을 하게되고 니키시, 푸르트벵글러, 멩겔베르크 등과 같은 지휘자도 이 소년과 다투어 공연을 가졌고 런던과 미국, 남미에서도 데뷔 무대를 갖는다. 그리고 1925년에는 22세의 젊은 나이에 시테른 음악원 교수에 취임하고,1927년에는 제네브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그의 국제적 연주 활동은 본 궤도에 진입한다. 이 때 심사위원을 맡은 루빈스타인은 "우리들 모두는 채 2분도 지나기 전에 아라우의 진가를 알았다.

심사위원들은 만족하게 이 결론에 이르렀다. 이 콩쿠르는 마치 경마용의 우수한 말고 마차를 끄는 말과의 시합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의 연주회는 근면함과 왕성함 그리고 다양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기록을 보면 1943년부터 1950년 사이에 협연을 포함하여 모두 600여 회에 이르고 있다. 또한 1930년 베를린에서 12번의 리사이틀을 통해 바흐의 건반 음악을 모두 연주한 것은 특히 기록에 남는 사건이다.

그의 레퍼토리는 바로크에서 낭만에 이르기까지 광대하며 특히 베토벤, 쇼팽, 리스트 작품을 통해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다.특히나 바흐나 베토벤의 연주로 유명하며 그는 EMI나 필립스에서 광대한 음반을 남겼다. 그 방대함은 루빈스타인이나 호로비츠를 능가할 정도이다. 그를 흔히 비르투오조의 거장이라고 일컫듯이 쇼팽과 리스트의 작품에서도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흔히들 아라우를 박하우스나 캠프보다 더 독일적인 연주를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라우의 연주에서는 악보가 지시하는 것을 성실한 자세로 존중하며,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그는 끝까지 꼼꼼히 연주하는 즉,일점 일획도 소홀히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 가지만, 결코 음악이 조형적으로 어둡지 않으며, 음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만들어내면서 곡의 논리성과 자신의 감수성을 하나로 합쳐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의 건반터치의 투명함과 명료함은 쇼팽의 연주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많은 녹음을 해 온 폰카 슈트라우스에 의하면 아라우는 어떠한 순간에도 완벽한 연주를 이룰 수 있었던 피아니스트였다 라고 한다. 지금도 그가 닦아놓은 남미 클래식의 전통위에서 아르헤르치 등과 같은 남미 연주자를이 그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Claudio Arrau의 대표곡 감상
Schubert
Moments musicaux, D.780 No.3 in F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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