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문학작품

민들레에 관한 시 모음

想像 2024. 3. 1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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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에 관한 시모음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 곽재구

 

그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서울 민들레  / 김옥진

 

보도블럭 틈새에 
노랗게, 목숨 걸었다 
코흘리개 아이들 등교길 따라가다 
봄 햇살 등에 업고 장난치며 
놀다가, 길을 놓쳤다 
꿀꺽-- 서산으로 넘어가는 
봄.

 

 

 

민들레의 연가 / 이해인

 

은밀히 감겨 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날마다 봄 하늘에 시를 쓰는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얇은 씨를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해에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민들레 / 이윤학

 

민들레꽃 진 자리
환한 행성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가벼운 홀씨들이
햇빛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거장도
아닌 곳에
머물러 있는 행성 하나

마음의 끝에는
돌아오지 않을
행성 하나 있어

뿔뿔이 흩어질
홀씨들의
여려터진 마음이 있어

민들레는 높이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민들레 / 손정호

 

풀씨로 흩날려 
산천을 떠돌다 
못 다한 넋이 되어 
길가에 내려앉다 

곧은 심지를 땅 속에 드리우고 
초록이 어두워 대낮에도 노랗게 불 밝히며 
겸손되이 자세 낮춘 
앉은뱅이 꽃이여! 

불면 퍼지는 하이얀 씨등 
바람결에 흩날려도 
머무는 곳 가리지 않는 
떠도는 넋이여, 
끝없는 여정이여! 

뜯겨도, 짓밟혀도 
하얀 피로 항거하며 
문드러진 몸을 털고 
다시금 고개 드는 끈질긴 생명 

 

 

민들레꽃 연가 / 이임영

 

한적한 논둑 길
이름 없는 들풀 속에 자라나서
어느 봄날 
노란 꽃잎 곱게 펼쳐
미소를 보낼 때
그때도 당신이 모른 척하시면

그리움으로 맺힌
씨앗 하나하나에
은빛 날개를 달아서
그대 창에 날려보내노니
어느 것은 바람에 방향을 잃고
어느 것은 봄비에 쓸려가기도 하겠지만

간절한 그리움의 씨앗 하나
그대 창에 닿거든
무심히 버려둬서 
척박한 돌 틈에 자라게 하지 말고
그대 품 같은 따스한
햇살 잘 드는 뜨락에 심어서
이듬해 봄 화사하게 피어나면
내 행복의 미소인냥 아소서 

 

 

 

나는 민들레를 좋아합니다 /  안드레아 슈바르트·독일

 

꽃집에는
민들레꽃이 없습니다.

그것은
팔 수 있는 꽃이 
아닌가 봅니다.

마치
우리가
사랑과 다정함
우정과 소중한 사람을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야생으로 자라나
한적하게 꽃을 피우고
마침내
자신을 향해
허리를 굽힐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나는 당신에게
민들레꽃 하나를
꺾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몹시 원망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았습니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앉은뱅이 부처꽃 / 고영섭

 

천지 사방에다 무허가 판잣집을 지은 그는 
이름 없는 목수였다 
갈 봄 여름 없이 
연장통을 옆에 끼고 
삼천대천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깎아지른 벼랑 위에 암자를 지었고 
지붕 위로 날려온 흙 위에도 초가를 지었다 
눕는 곳이 집이었고 
멈추는 곳이 절이었다 
몇 달 전부터 요사채 말석에 
가부좌를 틀고 웅크리고 앉아 
문득 한 소식을 얻었는지 
노오란 안테나를 하늘로 띄우며 
꽃씨 몇 개 날리며 천리 길을 떠나는 그는 
제 앞으로 등기한 집 한 채 없이도 
바닥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오늘은 민들레꽃이 세운 집 한 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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