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문학작품

[명시감상] 김춘수 - 꽃

想像 2023. 8. 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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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인 김춘수는 1922년 11월 22일 경상남도 통영읍 서정 61번지에서 태어났다. 1935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중고교)에 입학, 1939년 자퇴하고 1940년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 입학했다. 1942년 12월 일본 천황과 총독 정치를 비방하여 세다가야 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서울로 송치되었다. 1945년 통영에서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고 1946년 8월 광복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통영중학교, 마산중학교 교사,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이 되어 문공위원으로 활동했다.

 

언어와 존재에 대한 철학이 담긴 시를 썼다. 의미에 대해 천착했던 그는 태도를 바꾸어 1970년대부터는 ‘무의미시’를 제시했다. 관념과 의미 이전의 존재의 본질에 대해 탐색하고자 하는 열망의 소산이었다. 또한 무의미시는 역사와 의미에 대한 허무 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는 1990년대 해체시의 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시집으로 『늪』(1950), 『기』(1951), 『인인』(1954),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 기타』(1969), 『처용』(1974), 『김춘수시선』(1976), 『꽃의 소묘』(1977), 『남천』(1977), 『비에 젖은 달』(1980), 『처용 이후』(1982), 『처용 단장』(1991), 『서서 잠드는 숲』(1993), 『들림, 도스토옙스키』(1997), 『의자와 계단』(1999) 등이 있고 시론집도 발표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그의 대표작이자 널리 사랑받고 있는 시이다. 너와 나, 연인 관계에 놓인 사람으로 대치하여,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해서 젊은이들에게는 연애시의 절창으로 애송되고 있다.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자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이 시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이런 평범한 연애시의 범주에 안주하고 있는 작품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를 가진 인간 존재의 본질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꽃’을 제재로 하여 사물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를 추구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의 ‘꽃’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특정 사물로서의 꽃이 아니라, 어떤 가치 있는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존재이다. 존재와 존재 사이의 의미와 관계가 확인되고 주체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의 표상을 ‘꽃’으로 명명한 것이다. 또한 이 시는 주체와 객체(대상)의 상호 관련성을 말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주체가 객체를 인식하고자 할 때 ‘꽃’과 같이 그 객체에 의미가 부여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몸짓’처럼 의미 없는 대상이 된다. 주체와 객체의 상호관련성은 언어(이름)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1연에서는 이름을 불러 주는 행위가 대상(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임을 말하고, 2연에서는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그 대상이 주체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왔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3연에서는 자신도 그 대상처럼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존재의 본질을 구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내고, 4연에서는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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