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음악/올드가요

[가요명반] 시인과 촌장 [숲] (1988)

想像 2022. 8. 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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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1988)
시인과 촌장


 

1. 가시나무
2. 새벽
3. 새털구름
4. 나무
5. 새날
6. 때
7. 새봄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
8. 좋은 나라
9. 푸른 애벌레의 꿈
10. 숲


시인과 촌장은 사실상 하덕규의 1인 프로젝트에 가깝다. 그 외 다른 뮤지션은(2집 이후 정식 듀오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함춘호까지도 포함해서) 세션맨의 위치에서 연주자로써 역할을 해준 경우에 해당되며, 작사, 작곡, 편곡에 이르는 음악적 키 포인트를 모두 그가 다 담당하고 만들어 내었다는 점, 특히나 음악에 담긴 감성의 핵심이 온전히 그만의 것이라 말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 말해도 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처럼 순수하면서도 청아한 감성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곡들과 가사는, 들을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 개운치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86년도에 발매되었던 [푸른 돛]도 그랬고, 2년뒤 발표되었던 이 앨범 [숲] 또한 마찬가지.

다만 [숲]은 그의 내면에 담긴 여러 자조적인 시선과 종교적 가치관들이 전작보다 좀 더 도드라진 느낌을 전해주는데, 바로 그 점에서 전작과의 차이점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돌아보는 자아 성찰적 태도와 더불어 은유적으로 현실의 암울함을 빗대어 표현한 가사들은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멜로디와 어울려 듣는 이들에게 무척이나 선명하게 메시지를 전해준다. (바로 포크음악이 가진 커다란 힘이기도 하다)

‘시인과 촌장’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사이먼&가펑클의 음악적 리더였던 거장 폴 사이먼, 그리고 밥 딜런이 함께 떠오르는데 은연중에 영향을 받았을 법한 편곡방식과 악기 세팅, 보컬 화음을 입힐 때의 아이디어들이 곡 사이 사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하덕규가 작곡한 멜로디의 진행은 이 둘과는 다른 점 또한 갖고 있었으며 (당연하게도) 가요의 패턴들이 녹아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아류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서를 음악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시인과 촌장은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는데 확실히 성공하였다. 더불어 이전 70년대 국내 포크음악들에서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간 중요한 성과로 이야기해도 좋지 않을까? 음악적인 관점에서 [숲]이 전작 [푸른 돛]과 달라진 점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곡으로 꼽고 싶은 게 바로 ‘가시나무’, ‘새벽’, ‘새봄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 ‘새날’ 같은 곡들이다. 한 대중가수의 리메이크로 널리 알려진 ‘가시나무’는 자신의 내적 부족함으로 인한 독백처럼 들리는 자기반성적인 가사와 구슬프게 들리는 멜로디가 하덕규의 미성과 어우러져 오랜 잔향을 남긴다. 러닝타임은 짧지만 앨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이채롭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마저 띠는 ‘새벽’은 아마도 하덕규가 지금껏 만든 여러 곡들 가운데 음악적으로 가장 훌륭한 트랙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기타와 플룻, 현악 스트링이 어우러진 인트로의 편곡에서 이어지는 신비로운 보컬 코러스까지, 마치 유럽의 어느 아트록 밴드가 만든 곡 같은 느낌을 줄만큼 타 트랙과는 확연히 다른 미감을 발산한다. (적어도 이곡은 코러스와 브릿지를 한차례 더 연결시켜 곡을 더 확장해 내었으면 더욱 탁월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 ‘새봄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은 통통 튀는 리듬 기타가 곡의 전반을 장식하는 가운데 마치 90년대 이후 등장한 모던 록 같은 음악적 스타일을 보여준다. 동화 같은 가사 또한 이 곡의 매력이자 특징. ‘푸른 애벌레의 꿈’은 이 앨범의 실질적인 대미를 장식하는 트랙으로 모자람을 인식하고 언젠가 이를 넘어서 성장해나가는 스스로에 대한 바람을 담아내고 있으며 앨범 전체의 주제를 투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 앨범 [숲]이 가요사에 남긴 중요한 의미는 당시 선배 포크가수들이 시선을 두고 있던 사회, 현실의 부조리함에서 한 개인의 내면의 성장, 가치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는 점에 있다. 더불어 우리네 삶에서 간과되곤 하는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과 보편적인 아름다움 또한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요사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출처 : https://www.melon.com/masterpiece/inform.htm?rank=54&albumId=309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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