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슈만과 클라라

슈만 : 어린이 정경, Op.15 [Martha Argerich]

想像 2020. 9. 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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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erszenen, Op.15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악기를 처음 접하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은 낮은 수준의 연습곡 혹은 바가텔이나 소나티네 같은 소규모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주로 교육과 연습을 목적으로 한 작품들로서 어린이 그 자체가 작품의 목적이나 동기는 아니었다. 어린이 혹은 요정들이 등장하는 오페라, 극음악은 간헐적으로 발표되긴 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작곡가가 어렸을 때 작곡한 것이거나 그저 어른의 입장에서 어린이를 등장만 시킨 음악이었다. 그럼 눈높이를 낮추어 동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어린이 세계를 바라보면 어떨까. 그 새로운 상상력을 발견한 최초의 작곡가는 바로 슈만이 아닐까 싶다. 일종의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독창적인 작품은 추억을 회상하기 위한 일기장과도 같기에,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838년 2월은 슈만에게 있어서 클라라와의 사랑에 한참 빠져있던 행복한 시기였다. 자신이 창조해낸 피아노 작품을 그녀와 공유하면서 현실에 대한 행복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음악 속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 당시는 슈만이 굳이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내면으로부터 끊임없이 음악이 솟구쳐 오르던 시기였다. 그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악보에 음표를 옮기기만 하면 되는, 그러한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질 때였다. 슈만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클라라를 초대하고자 [어린이 정경]을 작곡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클라라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가정을 꾸릴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독일풍의 검소하면서도 근면한 가정을 꾸린 뒤, 아이들이 뛰어노는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작곡가의 강한 의지가 이 곡에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클라라가 슈만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나는 당신에게 어린애처럼 보일 때가 많은 것 같아요”라는 문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하기 시작한 [어린이 정경] Op.15는, 서른 곡 정도를 작곡한 뒤 13곡으로 추린 피아노 모음곡 형식이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화려함에 비르투오시티를 더하던 당시의 작곡 경향을 벗어나 비르투오소적인 효과를 철저히 배재한 혁신적인 작품이다.

 

특히 어른들의 전유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교를 위한 기교를 없애고, 어린이다운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선율만으로 구성해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더욱 높다. 클라라는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을 담은 이 동심의 만화경 같은 세상에 매료되었다. 당시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각광받기 시작했던 그녀는 이 작품을 직접 연주하여 [어린이 정경]의 독특한 마력을 청중들에게 일깨워주었다.

 

높은 예술성과 고도의 시성을 머금고 있는 이 아름다운 걸작은 내용에 있어서도 이례가 없을 정도로 환상적일 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미래지향적이다. 슈만은 1848년 9월 자신의 장녀인 마리아에게 크리스마스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자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68을 작곡한 바 있는데, 이 작품만 하더라도 어린이가 피아노를 연습하고 상상력을 계발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 슈만 사후 무소르그스키의 [어릴 적의 추억]이나 바르톡의 [미크로코스모스], 비제의 [어린이의 놀이], 포레의 [돌리 모음곡], 드뷔시의 [어린이 차지], 차이콥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등이 작곡되며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장르는 역사적 연속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동심에 대한 반영이 아니라, 천재 예술가의 회상으로 채색된 그 독특한 세계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 유일무이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많은 피아노의 대가들이 이 작품에 도전해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준 바 있지만, 초절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작품으로부터 풍부한 상상력과 시성 넘치는 아련함을 이끌어내기란 모차르트의 피아노 작품을 제대로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7곡인 ‘트로이메라이’는 단순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인해 많은 연주자들과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소품이지만 그 내용과 표현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1986년 모스크바에서 이 작품을 앵콜로 연주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까닭 모를 눈물을 흘리게끔 한 것과 같은 그러한 내적인 강렬함과 절실함을 필요로 하는, 진정한 비르투오소가 아니고서는 슈만의 저 찬란한 시성을 표현해낼 수 없는 난곡 가운데 난곡이다.

 

Schumann: Kinderszenen; Kreisleriana

 

 

1. 미지의 나라들
아름다움과 낯설음에 대한 어린이의 호기심을 그려낸 작품.

2. 신기한 이야기
처음 듣는 이야기에 대한 어린이의 즐거움을 묘사한 대목.

3. 숨바꼭질
여기저기 숨으며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빠른 16분음표로 묘사된다.

4. 어린이의 희망
어린이의 간절한 바람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통해 실려나온다.

5. 완전한 만족
행복함으로 충만한 어린이의 평온함을 그려낸 음악.

6. 중대한 사건
옥타브의 도약을 통해 어린이의 굳센 단호함과 신선한 의지가 배어나온다.

7. 트로이메라이
꿈을 꾸는 어린이의 온화하고도 아름다운 정서가 폴리포니적 구조 안에 담고 있다.

8. 난롯가에서
난로 앞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가족의 친밀감과 안락함이 묻어난다.

9. 목마의 기사
용감하면서도 진취적인 리듬이 어린이의 고양감을 도취시킨다.

10. 대단히 심각하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어린이의 사색적인 순간을 포착한 장면.

11. 무서움
느림-빠름의 대조를 통해 이성적인 무서움과 본능적인 장난스러움을 동시에 표현해 낸다.

12. 아이는 잠들고
독특한 화음을 통한 기묘한 분위기와 평화로운 멜로디가 꿈나라의 신비로움을 그려낸다.

13. 시인은 말한다.
[어린이 정경]에서 회자의 심상이 가장 응축된 장면이다. 은밀한 상처를 남기는 듯한 단호한 어조와 이를 아물도록 위로하는 듯한 탐미적인 어투가 대조를 이루며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네이버 지식백과] 슈만, 어린이 정경 [Schumann, Kinderszenen Op.15] (클래식 명곡 명연주, 박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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