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Sunflowers, 1888)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
런던 내셔널 갤러리 (The National Gallery)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1853-1890)는 네덜란드에 태어나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테라스등의 작품으로 매우 유명하다. 특히 해바라기는 고흐의 꽃으로 불릴 만큼 고흐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고흐는 생전에 총 12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다. 그 중에서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라는 주제를 기준으로 총 7점의 해바라기 그림이 있다. 7점 모두 구도는 거의 똑같습니다만 해바라기의 갯수가 3개, 12개, 15개로 차이점이 있다.
1888년, 고흐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아를(Arles)에서 화가 공동체를 실현시키고자 했다. 반 고흐는 동료화가들 중 특히 평소에 존경하던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1848-1903)과 함께 하고 싶었다. 긴 설득 끝에 고갱은 아를의 ‘노란 집’에 올 것을 약속했고 반 고흐는 그와 함께 생활할 보금자리를 정성스럽게 꾸미기 시작했다. 평소 해바라기 꽃을 유달리 좋아했던 반 고흐는 그들의 화실을 노란색의 해바라기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이는 실제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고갱과 함께 아틀리에에서 살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방의 장식을 만들고 싶다. 그것도 큰 해바라기만으로'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화실 전체를 해바라기로 장식하고자 했던 첫 계획과는 달리 반 고흐는 연작 중 잘 된 작품 두 점만을 고갱이 쓸 방에 걸어두었다.
런던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1888년 완성된 12송이의 해바라기가 그려진 《해바라기》는 8월에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연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그때 그려진 《해바라기》연작 가운데 하나로 고흐에게 '태양의 화가'라는 호칭을 안겨준 중요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화병에 꽂혀있는 15송이의 해바라기를 볼 수 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해바라기는 빨리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황혼이 틀 무렵까지 해바라기를 그린다’라 적고 있다. 그래서 일까? 그림 속 해바라기는 제각각 다른 모습이다. 어떤 해바라기는 활짝 피어있으나 또 다른 해바라기는 바닥을 향한 채 시들어가고 있다. 상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 보이는 것을 재빠르게 그려낼 때 포착 가능한 시간의 흐름을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인 반 고흐는 꽃의 섬세함을 포착하면서도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빛과 색채를 통한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뜨겁고 격정적인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으로 그의 짧고 비극적인 삶과 예술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
《해바라기》는 색채, 특히 노란색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고흐에게 노랑은 무엇보다 희망을 의미하며, 당시 그가 느꼈던 기쁨과 설렘을 반영하는 색이다.
또한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은 유화를 두껍게 칠해 해바라기의 강한 생명력과 불륨감을 표현하였으며, 동시대 작품들과 비교화여 조각같은 입체감을 표현한 걸작이다. 대부분 노란색조로 그려졌지만, 화분에는 노란색과 대비되는 파란색을 사용해 자신의 서명을 남기고 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노란색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의 해바라기에 대해 언급하며 "이것은 환한 바탕으로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쓰고 있다. 더불어 대담하고 힘이 넘치는 붓질은 그의 내면의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 보여준다. 고갱에 대한 열광적인 환영의 의미로 그린 이 작품이 완성되었지만 고흐와 고갱, 둘의 동행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다. 2개월 후 고흐와 고갱은 큰 싸움을 한 끝에 고갱은 도망치듯 파리로 떠나게되고, 이후 고흐는 스스로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