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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빈센트 반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

by 想像 2020.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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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가 있는 밀밭(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
런던 내셔널 갤러리 (The National Gallery)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직업을 가졌으나 근본적으로 섬세하고 예민한 예술가적 성향과 종교적 영성으로 인해 평생을 심리적인 혼란 속에서 보낸 화가이다. 전도사를 비롯한 여러 직업을 지녔으나 1883년부터 미술 작업을 시작하여, 비록 생전에 대중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였으나 수많은 걸작을 남긴다.

 

1888년 10월, 고갱이 반 고흐의 '노란 집'으로 이사를 왔다. 두 화가는 몇 주간 함께 작업을 했으나, 결국 사이가 악화되어 급기야는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고갱은 떠나갔고, 반 고흐는 병원에 입원했다. 

 

신경 쇄약 증세로 인해 1889년부터는 남부 프랑스의 생 레미(St. Rémy)에 입원하여 요양하게 되는데, 이 시기가 바로 반 고흐가 <삼나무가 있는 밀밭>을 제작한 때이다. 생 레미는 요양원이자 수도자들의 은둔지와 같은 수도원이었고 또한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이었으므로 반 고흐는 1890년 우울증이 심화되어 자살하기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심오한 정신적 의미가 담긴 표현주의적인 작품 <별이 빛나는 밤>(1889)을 그렸고, 또 병원 근처에 있던 작은 숲의 짙은 삼나무와 올리브 나무도 자주 그렸다.

 

생 레미에서의 요양으로 프로방스 지방에 오랜 기간 머물게 되면서 반 고흐는 그 지역에 고유한 대기와 본질을 포착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것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풍경화에서 나타났던 아름다운 지리적 광경으로서의 인상들로 풍경을 인지한 것이 아니라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지중해 연안의 자연적인 형상들에 주목한 것으로, 더 나아가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표현이 강조되는 그의 작업의 흐름과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프로방스 경치의 특징은 그에게 삼나무와 올리브 밭, 그리고 산들로 나타났다. 

 

1889년 7월 초 테오에게 보낸 서신에서 반 고흐는 그 해 6월에 시작한 삼나무 시리즈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삼나무들이 항상 내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삼나무를 소재로 그의 걸작으로 알려진 해바라기 작업과 같은 캔버스 시리즈로 만들고 싶어하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한다.

 

그는 수평 구도를 가진 풍경화 형태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의 여러 버전을 펜 드로잉과 함께 개인 컬렉션에 있는 또 다른 유화로 반복해 그려 총 세 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갈대 펜으로 그린 소묘(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이고, 나머지 두 점은 그해 가을에 그린 유화이다(런던 내셔널 갤러리,개인소장품).

 

반 고흐는 1885년에서 1886년 사이에 앤트워프의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일본 목판화와 루벤스의 작품들에 감명을 받았으며, 1886년에 파리에서는 드가, 고갱과 쇠라와 같은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화려한 색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반 고흐는 인상주의의 비교적 안정적인 화면에서 더 나아가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평가되는데,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생동하는 생명력과 표현적이며 감정적인 선명한 색채, 그리고 화면에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도 물감을 두껍게 덧발라 표현하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인해 힘이 느껴지는 붓터치를 특징으로 한다.

 

이 작품에서 삼나무는 그가 표현하였듯이 햇빛이 가득한 금빛의 들판 가운데 하나의 이질적인 검은 흔적처럼 화면의 끝까지 불꽃처럼 요동치며 수직으로 솟아 있고, 하늘은 붓자국으로 가득 메워진 채 부풀어 오른 희고 푸르거나 초록의 구름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불안감이 느껴지는 대상의 왜곡된 형태와 자유롭고 다채로운 붓자국의 사용, 그리고 상반되는 채도와 보색의 대비는 불안정했던 화가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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