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민
한국의 대표적 재즈 피아니스트
1990년 자신의 그리움을 가득 담은 첫 앨범 [지구에서 온 편지 Letter from the Earth]로 세상 사람들 앞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앨범은 친하게 지냈던 음악 친구 고(古) 유재하를 그리며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은 그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편안함과 서슴없는 움직임이 그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재즈라는 단어가 간신히 귀에 익숙해질 무렵이던 그 시절, 화려한 쇼 무대 출연이나 엄청난 홍보 작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기 시작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종이배가 냇가에 와 닿듯 살짝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면서.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 중학 시절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던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학 시절 잠시 벽에 부딪쳤으나(그는 부모님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명지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해야 했다), 재학 중 한국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그룹이라 평가받는 '동서남북'이라는 밴드를 결성, 활동하게 했다(1980년). 또한 1981년 MBC 대학가요제 수상팀들 가운데 동상을 수상한 그룹 '시나브로'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그는 이 시절의 활동들에 대해 말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현재 자신이 걷고 있는 길과는 너무 다른 방향이어서 이기도 하겠고 자신의 미숙했던 시절이 자꾸 거론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왕년이 화려했던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동서남북'의 음악이라면 매니아들 사이에 맛난 음악으로 평가받고 있지 않은가)
이후 몇 년간 그는 클럽 연주와 녹음실 세션으로 활동하다가 자신만의 음악을 찾기 위한 여행길에 나선다. 1986년 재즈 음악의 메카 버클리 음대, 그리고 이어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잇달아 진학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던 공부를 원 없이 하게 된 것이다. 6년여에 걸친 자기 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귀국해 만든 앨범이 바로 [지구에서 온 편지 Letter from the Earth]. 이어 1993년에는 두 번째 앨범 [달 그림자 Shadow of the Moon]를 통해 한층 깊어진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선보인다. 그리고 6년 후인 1999년 가을, 그의 세 번째 앨범 [보내지 못한 편지]가 배달됐다. 그간 다른 가수들의 앨범에서 그의 음악을 만나는데 만족해야 했던, 그래서 더더욱 그만의 향기가 가득한 앨범에 목말라 했던 많은 팬들의 호응에 답하듯 그의 음악에서는 음악의 나이가 느껴진다. 훨씬 깊이가 느껴지고 무르익은 실력과 감성이 알알이 박혀 있다.
이렇듯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그의 음악을 두고 정통 재즈라 하기에는 뉴에이지에 가깝다느니 클래식 소품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의미가 없다. 그에게는 이러한 평가나 장르 구분이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이라는 커다란 바다에서 잔잔한 흐름을 만들어 가는 '즐거운 물결'일 뿐이다.
그는 가수 이현우와 함께 진행한 MBC의 "수요예술무대"로, 약간은 어눌하게 들리지만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가진 좋은 진행 솜씨와 깊이있는 음악 해설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약 13년간 자리를 지키게 된다. 이 때의 방송 진행 경력으로 인해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음악가이면서도 안정적인 방송 진행 능력을 가지는, 국내 몇 안되는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020년대인 현재도 "놀면 뭐하니"나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등의 TV 방송에 출연하며 잊을만 하면 소환되는 음악가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