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기타작곡가

바르톡 : 현악4중주 1-6번 (6 String Quartets) [Hungarian String Quartet]

想像 2023. 1. 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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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String Quartets

Béla Bartók,1881 - 1945


 

String Quartet No.1, BB 52, Op.7, Sz. 40
1. 1. Lento
2. 2. Poco a poco accelerando all' Allegretto - Introduzione. Allegro - attacca:
3. 3. Allegro vivace - Adagio - Tempo I

 

String Quartet No.3, BB 93, Sz.85
4. 1. Prima parte (Moderato)
5. 2. Seconda parte (Allegro)
6. 3. Ricapitolazione della prima parte (Moderato)
7. 4. Coda (Allegro molto)

 

String Quartet No.5, BB 110, Sz.102

8. 1. Allegro
9. 2. Adagio molto
10. 3. Scherzo. Alla bulgarese
11. 4. Andante
12. 5. Finale. Allegro vivace

 

String Quartet No.2, BB 75, Op.17, Sz.67
13. 1. Moderato
14. 2. Allegro molto capriccioso
15. 3. Lento

 

String Quartet No.4, BB 95, Sz.91
16. 1. Allegro
17. 2. Prestissimo, con sordino
18. 3. Non troppo lento
19. 4. Allegretto pizzicato
20. 5. Allegro molto

 

String Quartet No.6, BB 119, Sz.114
21. 1. Mesto - Vivace
22. 2. Mesto - Marcia
23. 3. Mesto - Burletta (Moderato)
24. 4. Mesto


【 음악 해설 】

 

벨라 바르톡의 현악 사중주 곡들은 20세기 레퍼토리 전반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20세기 주요 경향인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의 영역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현악 사중주 장르이지만 바르톡의 작품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의 작품들은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사중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곡가 개인의 음악적 변화의 궤적을 살필 수 있는 매체이면서 현악 사중주라는 장르자체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기에 매우 유용하다. 특히 바르톡의 주된 악기는 현악기가 아닌 피아노였고 그 자신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그가 만든 현악 사중주 작품들의 탁월한 성과는 매우 놀라운 것이다. 바르톡이 남긴 현악 사중주곡은 모두 6개이다. 각 번호들은 후기 낭만주의의 잔영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실험을 거쳐 극히 바르톡적(的)이기는 하지만 조성감(tonality)으로 회귀하는 듯 한 마지막 6번으로 마무리 된다. 그 사이 자리 잡은 중기의 사중주들은 급진적인 실험으로 채워지고 그 중 3번은 바르톡의 전 작품 중 가장 난해한 하나로 꼽힌다. 그의 사중주들에는 날카로운 유머와 깊은 우울과 같이 대조적인 감정들 뿐 아니라 헝가리 민속 재료에서 뽑아낸 참신하고 다채로운 음악 언어들이 풍부하게 포진되어 있다. 이들 작품 속에서 악기의 표현 방식도 확장되었다. 예컨대 현악기의 줄을 잡아 뜯은 후 핑거보드에 다시 튕기게 하는 이른바 ‘바르톡 피치카토’ 같은 것들은 유명하다.

 

흔히 바르톡의 사중주들은 베토벤 사중주 이후 만들어진 같은 장르의 작품들 중 최고의 걸작으로 치부된다. 베토벤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악 사중주라는 매체는 바르톡이 평생에 걸쳐 일관된 애정을 가졌던 장르이다. 베토벤처럼 그도 첫 사중주를, 비록 정식으로 출판은 되지 않았지만, 이른 나이인 18세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의 공인된 6개의 성공적인 사중주곡들은 30여년이라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례로 탄생한다. 그리고 베토벤처럼 바르톡도 죽기 직전까지 또 다른 사중주에 착상한 후 작업을 시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르톡은 베토벤처럼 사중주 속에서 그의 음악 스타일의 드라마틱한 진화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또한  전통적 현악 사중주의 차원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며 형식, 테크닉, 조성감, 전반적 구성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개혁과 발전을 이루어냈다. 베토벤의 그것처럼 바르톡의 사중주들은 그가 개척한 새롭고 창의적인 음악적 아이디어의 실험실이 된 것이다.

 

사중주 1번이 나오던 1908년 경의 작품들로는 ‘Rhapsody for piano and orchestra', 'Orchestral suite 2번', '피아노를 위한 바가텔' 그리고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등이 있다.  바르톡 초기작품들 속에는 브람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그리고 드뷔시 같은 선배 작곡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뚜렷한 가운데 ’현악 사중주 1번‘에서는 이제 막 시작되는 헝가리 민속음악에 대한 관심을 최초로 구체화한다. 무엇보다도 콰르텟 1번은 당대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Stefi Geyer를 향한 바르톡의 열렬한 짝사랑의 정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바르톡은 실제로 그녀에게 보내 편지에서 이 1번의 1악장을 ‘장송행진곡’이라 지칭했다. 그녀를 향한 마음을 이윽고 접는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녀로부터 거부당한 자신의 모습은 이미 살아있는 자의 것이 아니라는 표현인가? 어떻든 간에 1악장 시작의 모티브는 바르톡이 이전 가이어에게 헌정했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동일하다. 바르톡은  협주곡을 그녀에게 헌정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것을 숨겨놓고 있었다.  가이어와의 여의치 않은 관계가 반영되었던 탓이라고 추론할 만한 사안이다. 가이어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뛰어난 기량 뿐 아니라 뭇 남성들을 매료시키는 특별한 매력을 지닌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대 헝가리의 유명 지휘자나 작곡가들 중 많은 이들이 그녀를 흠모한 사실은 유명하다. 바르톡 역시 그녀에게 구애했으나 그녀는 바르톡에게 대체로 냉정하게 대한 것으로 되어있다. 상심한 작곡가는 협주곡과 현악 사중주를 그녀에게 바치지만 그들의 관계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종류의 것으로 굳어진다. 두 사람은 결별 아닌 결별을 한 이후에 한동안 연락이 끊겼지만 훗날 바르톡이 두 번째 부인인 디타(Ditta)와 함께 미국 이민을 준비할 때 다시 나서서 그들을 도와주기도 하는 등 나중에는 우호적인 관계로 돌아서기도 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가이어와의 관계가 반영되어있는 1번은 바르톡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나 예술적 측면에서 동시에 의미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첫 사중주는 나중 번호들처럼 형식과 내용이 완벽하게 균형을 갖추거나 내용상의 강렬한 임팩트는 덜할지 모르나 젊은 작곡가의 수줍고 내밀한 정념의 고백이 내재된 이디엄에서 이미 그 만의 개성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치밀한 대위법적 구조로 전개되는 1번 1악장은 자주 베토벤의 느린 후가(fuga)로 시작하는 현악 사중주 14번에 비견되기도 한다. 초연은 1910년 3월 19일  당시 매우 활동적이던 그룹 Waldbauer-Kerpely Quartet에 의해 부다페스트에서 이루어진다.  작품 초연 이틀 전 바르톡은 이 그룹과 함께 동료 작곡가 코다이의 작품들을 연주한 바 있었다. 이 두 번의 이벤트를 훗날 사람들은 ‘헝가리 음악 두 번의 생일’이라고 부른다. 이 이벤트를 통해 바르톡과 코다이는 진정한 헝가리의 작곡가로 세상에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헝가리 음악의 미래에 함께 비전을 던져주었던 절친 코다이는 현악 사중주 1번을 이렇게 평한다. ‘자칫 헤어 나오지 못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이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살아 돌아온 사연을 담은 내밀하고 개인적인 드라마’.  이는 바로 바르톡 내면을 향한 묘사일수도 있지만 전통적인 중부 유럽 집중식 음악 이디엄의 통제로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독창성을 향한 자유를 추구하기 시작한 한 작곡가의 음악적 출발에 대한 비유가 될 수도 있다. 이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세계로의 항해는 바르톡이 일생을 통해 신명을 바치는 작업이 된다. 그래서 이 1번은 어떤 의미에서 바르톡 음악세계의 원형(archtype)으로 자리 잡는다.

 

1번 작곡 후인 1910년경부터 바르톡에게  힘든 시기가 시작된다. 그의 유일한 오페라 ‘ 푸른 수염의 성’(1911)은 내용이 너무 난삽하다는 이유로 부다페스트 오페라단으로부터 공연 거부를 당한다. 창작 중이던 발레곡 ‘나무 왕자’도 별 진척이 없었다. 바르톡은 이 우울한 시기에 창작 활동 대신 여러 지역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민속자료를 모으는 일에 더 열중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동유럽 전역과 발칸반도 및 터키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다니며 민속 음악 자료를 수집하는 일은 바르톡에게는 하나의 출구였다. 하지만 전쟁은 그의 탐사를 중단시켰고 바르톡은 다시 작곡에 매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 나온 작품이 ‘현악 사중주 2번’이다.  1915년에서 17년에 걸치는 꽤 오랜 기간을 거쳐 2번은 만들어진다. 바르톡 작곡 이디엄의 일종의 모색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바르톡은 그가 두루 섭렵한 전통적 클래식 음악의 이디엄에 어떻게 하면 헝가리 민속자료를 적절하게 배합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장시간 고민했다. 그는 당시 젊은 바이올리니스였던 Andre Gertier에게 보낸 편지에서 2번의 1악장은 소타타 형식, 2악장은 ’론도의 일종‘ 그리고 3악장은 ’정의하기 어려운 일종의 3부 형식‘이라고 썼다. 그만큼 그는 새로운 내용을 담는 형식의 구축에 고심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는 아직 남은 드뷔시의 영향도 감지된다. 헌정은 1번을 초연했던 Waldbauer-Kerpely 사중주단에게 했다. 그들은 물론 이 2번도 1918년 3월 초연했다. 이즈음 사중주 2번에 이어 나오는 무언극음악 'The miraculous mandarin'과 2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통해 바르톡은 강도 높은 특유의 긴장감으로 가득 찬 일련의 작품들을 만든다.  이 시기에 마침내 완성된 발레곡 ‘The wooden prince'는 바르톡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만든다.

 

현악 사중주 문헌에서 최고 수준의 걸작으로 치부되는 3번과 4번은 1927년과 28년에 걸쳐 만들어졌고 이 시기 바르톡의 작곡 어법은 어떤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단순해진다. 즉 아직까지 전시대의 영향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있던 1번과 2번보다 확실한 정체성을 지향하는 작곡가의 초상이 한결 뚜렷해진 것이다. 1926년에 만들어진 3번은 악장 구분 없이 계속된다. 따라서 연주시간도 6개 중 가장 짧다. 전 곡을 연주하는데 15분 정도 걸린다. 이 곡은 그의 6개의 사중주들 중 가장 치밀하게 짜여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 작품에서 바르톡은 드디어 민속 이디엄과 베토벤 후기 사중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강렬한 대위법적 요소의 성공적인 결합을 이루어낸다. 앞선 두 번호에 비해 3번은 화성적으로 훨씬 대담해졌고 대위법의 취급도 한층 복잡해졌다. 동시에 악기들의 새로운 주법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Sul ponticello, Col legno, Glissandi등을 비롯해 ‘바르톡 피치카토’도 자주 나온다. 3번과 연이은 4번은 바르톡이 알반 베르크의 현악 사중주 곡 ‘서정적 조곡( Lyric Suite)’를 듣고 감명을 받아 만들었다는 설은 유력하다. 3번은 또한 이례적으로 Music Society Fund of Philadelphia 이라는 단체에 헌정되었는데 실은 이 재단이 주최한 실내악 콩쿠르의 응모작이었다.  바르톡은 이태리 출신 작곡가 카셀라(Alfred Casella)와 더불어 공동 1위를 차지한다.

 

4번은 1927년에 완성된다. 3번 완성 후 채 1년이 안 된 때이다. 5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5번은 바르톡이 즐겨 실험하던 아치(arch)형식으로 되어있다. 3번에서도 이 형식은 시도되었는데 4번에서는 보다 더 능숙하고 세련된 솜씨였다. 즉 1악장과 5악장이 주제적으로 연결 되어있고 2악장과 4악장도 마찬가지인 가운데  3악장만 홀로 독립되어 있는 구조가 바로 아치 형식인 것이다. 이 곡에서도 역시 악기에 대한 실험은 계속되는데 2악장은 전 악기가 모두 ‘mute’상태로 연주되며 4악장은 전체가 피치카토로 이루진다. 3 악장의 어떤 음들은 비브라토를 내면 안 되며 글리산도와 ‘바르톡 피치카토’도 빈번하게 나온다. 어떤 평자들은 바르톡이 이 4번에서 자신만의 음렬주의와 무조성을 실험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4번은 Pro Arte Quartet에게 헌정되었으나 초연은 역시 Waldbauer- Kerpely Quartet에 의해 1929년 3월에 부다페스트에서 이루진다. 5번은 4번 이후 6년이나 지난 1934년에 씌여진다. 이 곡은 미국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후원자이던 Elizabeth Sprague Coolidge에게 헌정되었다. 그녀는 실내악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지녔던 것으로 유명하고 5번은 그녀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졌다. 4번과 마찬가지로 이 곡도 아치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당시 교육용 목적을 가진 음악 만들기에 관심을 가졌던 탓으로 현악기의 테크닉을 확장시키려는 기교 확장의도가 선명하게 감지된다. 5번은 Kolisch Quartet 에 의해 1935년 미국 위싱턴 D.C.에서 초연된다.

 

1930년대 후반은 바르톡이 매우 활발하게 그의 대표작들을 생산해내던 시기이다.  ‘Music  for strings, percussion and celesta(1936)’, ‘Sonata for two pianos and percussion(1937) 그리고’바이올린 협주곡 2번‘이 연달아 나왔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헝가리 및 유럽 전반의 정치적 기류는 매우 좋지 않았다. 점차 독재적인 형태로 화하는 헝가리 정부의 모습을 수긍하기 힘들었던  바르톡은 그의 작품을 헝가리 내에서 더 이상 연주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비통한 심경과 위축감이  마지막 사중주 6번에 잘 드러난다. 마지막 번호는 1939년 바르톡이 아직 헝가리를 떠나지 않았을 때 부다페스트에서 완성했다. 이 작품에서 그의 ‘새로운 형식’을 향한 갈구를 엿볼 수 있다. 내용은 여전히 치열하고 긴장감 가득하지만 수위를 어느 정도 잡아줄 전통적 틀에 대한 회귀라고 할까? 비록 네 개로 이루어진 각 악장들은 인정적 구성에 의해 정돈된 모습이고 내용의 전개도 선명한 화성적 컨셉을 지니고 있지만 이 6번은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어둡고 애매모호한 음악적 서술처럼 들린다. 각 악장의 서두는 유난히 슬픈 서주로 시작한다. 특히 마지막 악장은 경쾌한 춤곡으로 마무리하려 애초에 의도 했었지만 바로 그즈음 접한 어머니의 죽음에 깊은 충격을 받은 바르톡은 4악장을 또 하나의 슬픈 노래로 만들게 된다.. 이 6번은 어쩌면 바르톡 전 작품을 통틀어  마지막 번호가 될 수도 있었다. 이 곡 이후 바르톡은 자의 반 타의 반 고국인 헝가리를 떠나 쓸쓸한 미국 이민 길에 올라야 했고 이후 한동안  아예 작곡에 손을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국이주 후 한동안 넋을 놓고 있던 바르톡은 유명 지휘자 Koussevitzky의 요청이 있고 나서야 겨우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만들 수 있었고 그 외 몇몇 작은 규모의 소품들을 남길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죽음으로 완성을 보지는 못했지만 현악 사중주 7번을 위한 초고가 사후 발견된 일이다. 6번은 당대 작품 연주를 주로 하던 Kolisch Quartet에게 헌정되며 역시 그들의 손에 의해 1941년 미국에서 초연된다.

 

20세기 현악 사중주 작품들 중에서도 바르톡의 것들은 단연 구별된 평가를 받는다. 그 이후 쇼스타코비치나 미국 작곡가 Eliiot Carter같은 이들이 양질의 사중주를 만들기는 했지만 베토벤 이후 가장 빼어난 작품은 바르톡에 의해서라는 의견은 이제 보편적이다. 여섯 개 곡 하나하나의 완성도 높은 디테일을 지닌 내용도 그러하지만 여섯 곡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바르톡 음악 스타일의 변천과 성숙이다. 베토벤의 후기 쿼르텟의 깊은 영향이 아직도 묻어있는 1번을 시작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드뷔시 그리고 표현주의적 쇤베르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2번,  바르톡 만의 개성적인 표현주의 시대를 연 3번 과 4번을 지나 5번에서는 다소 절제하며 전통 존중의 네오 클래식 스타일로 선회하는 작곡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38년의 6번에서는 다소 암울한 빛깔로 채색된 비극적 내면 응시 및 비관적 세계관을 통해 바르톡 말년의 음악적 운명을 추론하게 만든다.  바르톡의 현악 사중주들은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의 과도기에 확실하게 자리 잡은 혼합스타일을 보여준다. 과거의 언어들과 전혀 새로운 어휘들이 한데 부딪히며 어우러져 내는 음악적 긴장감과 상승효과가 압권이다. 표현의 밀도와 구조적 형식의 효과적이고 발전적인 결합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 것 인가에 대한 해답을 바르톡의 현악 사중주들은 충실하고 선명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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