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문학작품

봄 시 모음 2 (봄에 어울리는 시 모음 2)

想像 2024. 2. 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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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시 모음 2 (봄에 어울리는 시 모음 2)


절기상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지만 전국 대부분 지역에 꽃샘추위가 찾아와 날씨가 쌀쌀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매화, 산수유, 벚꽃, 진달래 등 봄꽃 들이 하나둘씩 활짝 꽃망울을 터뜨려 성큼 다가온 봄 소식을 전하고 있다.

 

비롯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광양매화축제, 해남땅끝매화축제, 원동매화축제, 구례 산수유꽃축제, 섬진강 벚꽃축제,  진해군항제 등 전국 봄꽃축제들이 줄줄이 취소되었지만 그래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아무튼 빨리 코로나 19사태가 진정되어 봄꽃을 가슴 한 가득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빌어본다.

 

봄 -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봄 - 김기림

 

사월은 게으른 표범처럼
인제사 잠이 깼다.
눈이 부시다
가려웁다
소름친다
등을 살린다
주춤거린다
성큼 겨울을 뛰어 넘는다.

 

봄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은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距離)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 해를 따라

몇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봄을 위하여 - 천상병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론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봄까치꽃 - 이해인

 

까치가 놀로 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러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봄과 같은 사람 - 이해인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 해야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히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봄날 아침 식사 - 이해인

 

냉이국 한 그릇에 봄을 마신다

냉이에 묻은 흙 내음

조개에 묻은 바다 내음

마주 앉은 가족의 웃음도 섞어

모처럼 기쁨의 밥을 말아먹는다

냉이 잎새처럼 들쭉날쭉한 내 마음에도

어느새 새봄의 실뿌리가 하얗게 내리고 있다

봄 아침 - 이해인

 

창틈으로 쏟아진

천상 햇살의

눈부신 색실 타래

하얀 손 위에 무지개로 흔들릴 때

눈물로 빚어 내는

영혼의 맑은 가락

바람에 헝클어진 빛의 올을

정성껏 빗질하는 당신의 손이

노을을 쓸어 내는 아침입니다

초라해도 봄이 오는 나의 안뜰에

당신을 모시면

기쁨 터뜨리는 매화 꽃망울

문신(文身) 같은 그리움을

이 가슴에 찍어 논

당신은 이상한 나라의 주인

지울 수 없는 슬픔도

당신 앞엔

축복입니다

봄이 되면 땅은 - 이해인

 

깊숙히 숨겨 둔
온갖 보물
빨리 쏟아 놓고 싶어서
땅은 어쩔 줄 모른다

겨우내
잉태했던 씨앗들
어서 빨리 낳아 주고 싶어서

온 몸이
가렵고 아픈
어머니 땅

봄이 되면 땅은
너무 바빠
마음놓고 앓지도 못한다
너무 기뻐
아픔을 잊어버린다

 

봄 햇살 속으로 - 이해인

 

긴 겨울이 끝나고 안으로 지쳐 있던 나

봄 햇살 속으로 깊이 깊이 걸어간다

 

내 마음에도 싹을 틔우고

다시 웃음을 찾으려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을 감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끝자리에는

지금껏 보았지만 비로소 처음 본

푸른 하늘이 집 한 채로 열려 있다

봄 - 안도현

 

제비떼가 날아오면 봄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봄은 남쪽나라에서 온다고

철없이 노래부르는 사람은

때가 되면 봄은 저절로 온다고

창가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이 들판에 나오너라

여기 사는 흙 묻은 손들을 보아라

영차 어기영차

끝끝내 놓치지 않고 움켜쥔

일하는 손들이 끌어당기는

봄을 보아라

봄날, 사랑의 기도 - 안도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제대로 맞지 못하였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 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소서

큰 것보다는 작은 것도 좋다고,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것도 좋다고,

높은 것보다는 낮은 것도 좋다고,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도 좋다고,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그것들을 아끼고 쓰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주소서

장미의 화려한 빛깔 대신에 제비꽃의 소담한 빛깔에 취하게 하시고

백합의 강렬한 향기 대신에 진달래의 향기 없는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잊어버린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몸에도

물이 차 오르게 하소서

꽃이 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얼음장을 뚫고 바다에 당도한 저 푸른 강물과 같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봄밤 - 안도현

 

내 마음 이렇게 어두워도

그대 생각이 나는 것은

그대가 이 봄밤 어느 마당가에

한 그루 살구나무로 서서

살구꽃을 살구꽃을 피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하고 그대하고만 아는

작은 불빛을 자꾸 깜박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봄비 - 안도현

 

봄비는

왕벚나무 가지에 자꾸 입을 갖다댄다

왕벚나무 가지 속에 숨은

꽃망울을 빨아내려고

 

봄 소풍 - 안도현

 

점심 먹을 때였네

누가 내 옆에 슬쩍, 와서 앉았네

할미꽃이었네

내가 내려다보니까

일제히 고개를 수그리네

나한테 말 한번 걸어보려 했다네

나, 햇볕 아래 앉아서 김밥을 씹었네

햇볕한테 들킨 게 무안해서

단무지도 우걱우걱 씹었네

 

봄이 올 때까지는 - 안도현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봄 편지 - 안도현

 

점심 시간 후 5교시는 선생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숙직실이나 양호실에 누워 끝도 없이 잠들고 싶은 마음일 때,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조국입니다

참꽃같이 맑은 잇몸으로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이 철 덜 든

나를 꽃피웁니다

3월 - 오세영

 

흐르는 계곡 물에
귀기울이면
3월은
겨울 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 꽃숲에
귀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틔우는 대지에
귀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 3월은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만세 소리로 오는 것 같다.

3월 - 목필균

 

햇살 한 짐 지어다가
푸서리 진 고향 밭에 심어 볼까
죽어도 팔지 말라는 아버지 목소리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매지구름 한 조각 끌어다가
고운 채로 쳐서 비 내림 할까
황토밭 뿌리번진 냉이꽃
저 혼자 피다 질텐데

늘어지는 한나절
고향에 머물다 돌아가는
어느 날의 연둣빛 꿈

 

3월 - 박금숙

 

거친 눈발이 몰아치거나
느닷없는 천둥이 치거나
폭우가 쏟아지거나 하는 것은
참을성 없는 계절의
상투적인 난폭운전이다

3월은
은근히 다림질한 햇살이
연둣빛 새순 보듬어주고
벚나무 젖빛 눈망울
가지를 뚫고 나와
연한 살내 풍기는
부드러움이다

꽃샘추위 시샘을 부려도
서둘러 앞지르지 않고
먼 길 돌아온
도랑물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일 줄 아는
너그러움이다

3월은
가을에 떠난 사람
다시 돌아와
추웠던 이야기 녹이며
씨앗 한 줌 나누는
포근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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