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 M. 61
Maurice Ravel,1875 - 1937
▒ 라벨은 생기 넘치는 삶의 기쁨을 담고 있는 빈 왈츠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1906년에는 빈 왈츠의 대가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구상하였으나 결과적으로 1920년에야 〈라 발스〉로 구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라 발스〉 완성 전인 1911년, 8개의 짧은 왈츠로 이루어진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를 완성하였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동시에 〈라 발스〉를 향한 가교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제목에서 암시된 것처럼, 라벨은 이 작품을 구상할 때 슈베르트의 《우아한 왈츠》(D.969)와 《감상적인 왈츠》(op.50), 두 곡집을 모델로 했다. 왈츠의 생기와 낭만적 감수성을 조화시킨 슈베르트의 음악처럼 라벨 역시 균형 잡힌 프레이즈, 경쾌한 리듬, 루바토, 소박한 형식, 미묘한 화성진행 등 슈베르트적인 특징을 살려냈다. 그러면서도 ‘우아함’과 ‘감상적’, 서로 다른 성격의 왈츠를 개별적으로 출판한 슈베르트와는 달리, 라벨은 이 두 가지의 감성을 하나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작품으로 표현하려 했다.
또한 라벨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를 통해 여러 가지 혁신적인 시도들을 실험하였다. 특히 실험적인 화성을 사용함으로써 인상주의적인 음향과 현대적 감각을 함께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라벨의 이 실험적인 화성진행은 초연 당시 청중들의 비난을 불러일으킨 주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청중들은 음악회가 끝나고 작곡가의 이름이 밝혀진 뒤에도, 이 작품이 라벨의 것이 아닌 에릭 사티나 코다이의 작품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라벨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이듬해 피아노 독주곡을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편곡하여 발표하였다. 특히 라벨은 이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밤의 가스파르〉를 능가하는 투명한 음향을 표현하려 했다. 피아노 독주보다도 더 투명하게 빛나는 음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라벨은 정교하고 세심하게 악기들을 선택하고 배치했다. 왈츠라는 고풍스러운 형식 속에서 현대적 감각과 낭만적 격정, 관능적인 갈망과 투명한 꿈이 어우러져 정교하면서도 몽환적인 음의 향연이 펼쳐지는 오케스트라 편성은 곧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아델라이데; 꽃말〉이라는 제목의 발레로도 제작되었다. 이 발레는 라벨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리허설과 제작 과정에 참여하여 라벨 특유의 정밀함과 섬세함이 무대 위에서 유감없이 펼쳐질 수 있었다. 1912년에 초연된 이 발레는 러시아의 발레리나 나타샤 트로우하노바가 의뢰하여 제작된 것으로,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냈다.
발레 음악에서는 음악의 내용적 측면, 일종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곡을 바탕으로 한 발레에는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아델라이드와 꽃말" 그럼 어떤 내용의 음악인지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델라이드와 꽃말 - 발레의 줄거리
배경은 1825년 무렵, 파리의 고급 기녀 아델라이드의 집입니다. 무도회가 열리고 주인공과 아델라이드를 연모하는 미남 청년 로렌다가 초록빛 살롱에서 꽃말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한다는 내용이지요. 여기에 로렌다와 3각관계를 연출하는 부유한 공작이 나와서 이야기를 한층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끕니다.
제 1곡 Modéré, très franc
아델라이드 집에서의 무도회. 많은 남녀가 즐겁게 춤을 줍니다. 그녀는 방을 돌면서 손님을 환대합니다. 곡은 화려한 기분이 나는 합주. 처음 4마디 다음에 나오는 목관과 바이올린에 의한 상승적 악구는 즐겁고 유려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곡은 제1, 제 2왈츠로 전개됩니다.
제 2곡 Assez lent, avec une expression intense
"아름답고 우아하며 애수를 띤 청년 로렌다의 등장." 아델라이드와 꽃송이를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그가 바치는 미나리아재비꽃(혹은 봉숭아)은 매력에 찬 그녀에 대한 찬미를 뜻합니다. 이 곡은 제 1곡과는 대조적인 선율인데, 스페인의 옛 춤곡인 사라방드에 가까운 우아함과 우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세 개의 선율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오보에와 파곳으로, 다음에는 플루우트 솔로로. 마지막에는 처음의 선율-오보에와 파곳에 의한-을 삽입하고 그 위에 떠오르는 플루우트 솔로의 가락을 들려줍니다.
제 3곡 Modéré
아델라이드가 준 국화가 그리 좋은 의미가 아닌 것을 알고 로렌다는 생각을 돌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아델라이드는 역시... 도도합니다. 이 곡은 경쾌하면서 조금 차디찬 빛깔을 하고 있습니다. 스코어 속에 나타난 음의 빛깔과 다채로움은 관현악의 마술사 라벨다운 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제 4곡 Assez animé
"아세 아니메"란 더욱 역동적으로, 라는 뜻입니다. 앞서 나온 곡의 끝을 맺는 바이올린의 테마가 이 곡의 테마가 됩니다. 이 선율이 먼저 플루우트의 여린 선율로, 그 다음에는 클라리넷, 다시 플루우트와 클라리넷을 돕니다. 약간 집요한 성격의 이 주제는 소박함과 더불어 중후한 느낌을 줍니다. 이 장면은 이야기가 잘 되어가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 돈 많은 공작이 나타나 로렌다가 당황하는 부분입니다. (불쌍한 로렌다! ) 중후함은 공작의 분위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중후한 선율은 차차 pp 가 되고 다음 곡 주제의 첫 한 박자를 클라리넷에 남기면서 끝이 납니다.
제 5곡 Presque lent, dans un sentiment intime
"거의 렌토와 같은 빠르기로." 공작은 아델라이드에게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는 상자와 해바라기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여기서 해바라기는 헛된 부富를 뜻한대요.> 앞서 남은 한 음을 이어받은 클라리넷이 테마를 연주하면 잉글리시 호른이 이어 받으면서 곡이 전개됩니다. 현과 목관이 아라베스크를 수놓고 다양한 감정을 그려냅니다. 중간에 바이올린이 등장하는 부분을 빼고는 약간 쓸쓸함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제 6곡 Vif
로렌다는 계속 아델라이드를 따라갑니다. 그녀는 그때그때 적당히 그를 대하면서 거절하지만 로렌다는 꿋꿋이 따라다닙니다. 이 곡에서는 박자가 3/2, 6/4 등으로 변화를 하는데요, 빠른 진행과 더불어 줄거리의 내용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박자가 변화하면서 주제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대조와 융합을 거듭합니다. 전체 곡 중에서 가장 눈부신 느낌을 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 7곡 Moins vif
공작은 아델라이드에게 춤을 추자고 신청합니다만, 아델라이드는 받아들이지 않고 로렌다를 상대합니다. (불쌍한 공작! ) 풀이 죽어 한 구석에 있던 로렌다, 아델라이드는 그에게 춤을 권합니다. 로렌다는 사양하다가 끝내 함께 춤을 춥니다. 음악은 앞서 나온 곡의 마지막에 목관으로 취주되는 가락을 주제로 합니다. 약간 궁금증을 주는 듯한 서주가 끝나면 경쾌한 왈츠가 시작됩니다. 왈츠의 주제는 제 2바이올린에서 제 1 바이올린으로 옮겨가고, 점점 전개부는 화려해집니다. 이 곡은 전 곡 중에서 가장 다채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8곡 Epilogue. Lent
파티는 끝이 나고... 피곤해진 아델라이드. 혼자 창에 기대어 지친 얼굴로 라일락 향기(쾌락의 상징이랍니다)를 맡습니다. 로렌다가 발코니에 나타나 실망의 상징인 측백나무의 꽃과 금잔화를 던지고, 권총으로 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 가슴에 꽂고 있던 장미 한 송이를 살며시 떨어뜨리면서 그의 가슴에 몸을 던집니다. 이 곡은 잉글리시 호른이 연주하는 테마로 여리고 슬프게 시작됩니다. 곡이 고조하려다가는 가라앉으면서 전개하는 가운데 제 1곡 이후의 가락들이 슬쩍 나타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클라리넷의 가락이 피로한 기분으로 낮게 연주됩니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주제는 하프와 현의 음으로 고요히 사라지면서 음악과 함께 발레도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