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드뷔시·라벨·포레·사티

​[클래식명곡] 라벨 : 거울 (Miroirs), M. 43 [Jean-Philippe Collard]

想像 2025. 2. 26. 14:47

Miroirs, M. 43

Maurice Ravel, 1875~1937


Jean-Philippe Collard Ravel: Complete Works For Solo Piano ℗ A Warner Classics/Erato release, ℗ 1978 Warner Music France. Remastered 1997 Warner Music France

 

 

▒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작곡된 [거울]은 드뷔시의 [영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그 대상에 대한 묘사력과 관찰력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드뷔시의 [영상]은 반영된 이미지에 대한 심리적 환원인 반면 라벨의 [거울]은 굴절된 이미지에 대한 형체적 산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점 또한 갖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드뷔시처럼 대상의 형체를 해체시키지 않으면서 시야에 자의시적인 몇 겹의 층을 두어 굴절된 대상의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관찰한 독창적인 묘사법을 담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

 

[소나티네](1903~1905)와 같은 시기에 작곡한 작품이면서 고전주의적인 특징을 벗어나 이렇게 혁신적인 화성과 비르투오소 이상을 요구하는 연주기법, 이미지에 대한 특수하면서도 개성적인 관찰과 상상력을 담고 있는 [거울]은 사실상 라벨의 피아노 작품 가운데 가장 난해한 편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이후 작곡한 [밤의 가스파르](1908)라는 초현실주의적이고 상장주의적인 작품을 탄생케 한 교두보적인 작품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거울]의 다섯 곡은 각기 다른 사람에게 헌정되었다. [밤나방]은 작가 레옹-폴 파르그(Leon-Paul Fargue)에게, [슬픈 새]는 피아니스트인 리카르도 비녜스에게, [바다 위의 작은 배]는 화가 폴 소르드(Paul Sordes), [어릿광대의 아침노래]는 M. D. 칼보코레시에게, [종의 골짜기]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모리스 들라주(Maurice Delage)에게 그 영광이 돌아갔다.

 

그리고 이 모음곡 가운데 두터운 화성과 복잡한 리듬의 교차, 현란한 음색의 향연을 머금고 있는 [바다 위의 작은 배]와 [어릿광대의 아침노래]는 라벨이 직접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을 하여 각각 1907년 2월 3일 콩세르 콜롱에서, 그리고 1919년 5월 17일 콩세르 파들루에서 초연되었다. 그러나 이 [거울]에 담겨 있는 오케스트라적인 음향과 효과는 라벨 이후에 끊임없이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종의 골짜기]는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에르네스토 할프터(Ernesto Halffter)와 영국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퍼시 그레인저(Percy Grainger)가 자신의 편곡 버전을 남긴 바 있고, [슬픈 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펠릭스 귄터(Felix Günther)가, [밤나방]은 영국 피아니스트 미첼 로운드(Michael Round)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 NHK 교향악단의 위촉으로 가장 최근인 1993년에 편곡된 바 있다.

 

 

1. 밤나방(Noctuelles)


정교한 템포 변화와 어려운 페달링,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한 성부진행과 다이내믹의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연주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밤나방]은 ‘헛간에서 밤나방들이 꼴사납게 한쪽 들보에서 다른 쪽으로 날아다니는’(레옹-폴 파르그의 시로부터 영감을 받은) 모습을 반영이라기보다는 굴절된 시각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특히 나방의 신비로운 움직임과 부산스러운 분위기, 더불어 불빛에 반사되는 듯한 나방가루의 광채, 작곡가가 루바토로 지시한 순간적인 생명력을 연상시키는 패시지들은 라벨이 [물의 유희]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사물에 대한 묘사의 극한을 보여준다.

 

 

 

2. 슬픈 새(Oiseaux tristes)


라벨이 가장 좋아했다고 알려진 [슬픈 새]는 새에 대한 쿠프랭적인 취향과 드뷔시적인 색채감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서 작곡가 자신의 이국적인 개성과 독창적인 시성이 빛을 발하는 명곡이다. ‘여름의 가장 더운 시기에 어두컴컴한 숲이 주는 압박감에 길을 잃은 새들’의 인상을 환기시킨 것이라고 작곡가는 언급했는데, 이에 따르면 새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라기보다는 새의 불안함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리를 통해 굴절시켜 음악화한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균형 잡힌 음색을 바탕으로 장식음의 시그널적인 효과와 페달링에 의한 고요한 분위기가 중첩되는 이 작품은 라벨의 발전된 스타일과 어법의 탄생을 알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라벨은 ‘애드리브에 가깝도록’(presque ad lib)이라는 지시어를 적어놓아 [거울]에서 유일하게 연주자의 자의적인 해석을 유도하기도 했다.

 

 

 

3. 바다 위의 작은 배(Une barque sur l'océan)

 

물의 음악의 대가다운 라벨의 점묘적이면서도 영상적인 스타일이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서 리스트의 [에스테 장의 분수]가 더욱 발전한 듯한 느낌을 준다. 파도가 휩쓸고 가는 듯한 부서질 듯한 아르페지오와 햇빛에 반짝이는 듯한 트레몰로, 건반 전체의 울림을 통한 바다의 소리를 표현한 이 작품은 바다를 상징하는 왼손 반주의 아르페지오와 작은 배를 상징하는 오른손의 음형들이 유연하고 포근하면서도 격정적인 동시에 기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게다가 피아니시시시모(pppp)로부터 포르티시시모(fff)에 걸치는 광대한 다이내믹 레인지를 갖고 있어 피아니스트에게 터치와 음량 조절, 밸런싱에 있어서 극도의 집중력과 파괴력을 요구하는 만큼 라벨이 요구한 대로 악보대로만 연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4. 어릿광대의 아침노래(Alborada del gracioso)


[거울] 가운데 가장 신나고 유명한 곡인 [어릿광대의 아침노래]에 대해 발터 기제킹은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은 순전히 운에 달려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음악적 표현을 넘어서서 연주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곡이다. 복잡한 뒤나믹(강약법. Dynamik)과 연타음, 이중 글리산도, 왕복 아르페지오, 빈번한 옥타브 도약과 양손 교차가 펼쳐지는 이 곡의 내용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편으로서, 스페인적인 리듬을 중심으로 자유분방하지만 불안에 가득 찬 듯하고 앙상하게 메마른 듯하지만 음악적 표현들이 넘쳐흐르는 기이한 열정의 향연을 노래 부른다.

 

 

 

5. 종의 골짜기(La vallée des cloches)


앞선 네 곡의 격렬하면서도 난해한 구성을 마무리하는 듯한 조용하고도 감각적인 디저트와 같은 곡이지만 해석은 결코 용이하지 않다. 첫 대목에 등장하는 아득히 들리는 듯한 타종 소리와 이내 울려 퍼지는 잔향의 효과부터, 한편으로는 단순하게 보이지만 이에 입체감과 실재감을 부여하는 것은 피아니스트에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연속적으로 들리는 종의 재질인 금속의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과 그 음파가 계곡과 나뭇잎 등에 부드럽게 울려 퍼지며 묻어나는 듯한 느낌을 공존시키는 것은 보통의 감수성을 가진 피아니스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특별한 재능이다. 정중동(靜中動)의 공간에 미처 인식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종의 존재감은 어느새 무(無)의 세계로 소멸해 버리며 시적 감흥은 종결된다.

 

 

 

발췌 : [네이버 지식백과] 라벨, 거울 [M. Ravel, Miroirs] (클래식 명곡 명연주, 박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