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es Of Rome, P. 141
Ottorino Respighi, 1879~1936
▒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는 근대 이탈리아 작곡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오페라가 아닌 관현악곡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은 이른바 ‘로마 3부작’으로 불리는 [로마의 분수](1916), [로마의 소나무](1924), [로마의 축제](1928) 등이다. 이 세 작품은 공히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수도 로마(Roma)의 대표적인 풍물과 그 역사적⋅신화적 이미지를 다룬 교향시들로서, 레스피기 특유의 화려하고 세련된 관현악 기법과 고전적 형식미의 조화를 잘 보여준다.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레스피기가 관현악에 뜻을 둔 데에는 스승들의 영향이 컸다. 우선 볼로냐 음악원에서 그를 가르쳤던 루이지 토르토와 주제페 마르투치는 19세기 말 이탈리아에 독일 교향악 기법을 도입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둔 인물들이었다. 나아가 레스피기는 1900년에서 1903년 사이에 러시아에 체류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세헤라자데]의 작곡가로 유명한 ‘관현악의 마술사’에게서 전수받은 관현악 기법이야말로 그가 관현악 작곡가로서 대성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또한 그는 베를린에서 막스 브루흐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그런 레스피기의 역량이 최고조로 발휘된 [로마의 소나무]는 ‘로마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자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전작인 [로마의 분수]가 현실 세계에서의 환상을 다루고 있는 데 비해, 그로부터 8년 뒤에 발표된 이 작품은 현재를 바탕으로 과거에까지 눈길을 던지고 있다. 아울러 이 곡은 전작에 비해 한층 깊어진 정신 세계와 한결 세련된 관현악 기법을 보여주는 수작이라 하겠다. 전곡은 4부로 나뉘는데, 네 부분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연주된다. 각 곡은 로마의 명승지에 서있는 소나무들을 모티브로 삼아, 그 주변의 정경을 그리기도 하고 그와 관련된 고대 로마의 환영을 좇기도 한다.
제1부 보르게제 저택의 소나무 (The Pines Of Villa Borghese)
제1부 ‘보르게제 저택의 소나무’는 로마 시내의 중심부에 있는 16세기식 정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분산화음과 트릴과 글리산도가 어지러이 교차하며 떠들썩하면서도 상큼한 느낌을 자아내는 시작 부분이 무척 돋보이며, 저음악기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전체가 화사한 색채와 유쾌한 활기로 넘쳐나는 흥미진진한 곡이다.
제2부 카타콤부근의 소나무 (The Pines Near A Catacomb)
제2부 ‘카타콤 부근의 소나무’는 고대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대에 존재했던 지하의 비밀 분묘 겸 예배당에서 벌어지는 교인들의 집회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바탕으로 경건하고 신비로운 종교 의식의 광경이 느릿하고 묵직하게 펼쳐지며, 점차 고조되었다가 다시 가라앉는 흐름 속에서 한 차례 크게 떠올라 장엄한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중간부가 압권이다.
제3부 자니콜로의 소나무 (The Pines Of The Janiculum)
제3부 ‘자니콜로의 소나무’는 테베레 강의 서쪽, 바티칸의 남쪽에 위치한 자니콜로 언덕을 배경으로 보름달이 뜨고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밤의 정경을 묘사한 곡이다. 피아노의 카덴차 풍 독주에 이어 약음기를 단 현이 아스라한 음의 커튼을 드리우면, 그 위로 클라리넷, 오보에, 트럼펫 등의 관악기들이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관능적이며 때로는 우수에 젖은 선율을 연주한다. 전체가 환상적인 기운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곡으로, 드뷔시 풍 인상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제4부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The Pines Of The Appian Way)
제4부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는 기원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도로 위를 행진하는 고대 로마군의 당당한 위용을 지켜보는 환상을 감격적으로 그리고 있다.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군대의 발소리가 절묘하게 포착되어 있으며, 점진적으로 고조되어 가는 기개 넘치는 흐름과 용맹스럽게 울러 퍼지는 팡파르, 장렬한 마무리가 대단히 눈부시다. 이렇게 [로마의 소나무]는 현실에 존재하는 소나무를 모티브로 차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결국 고대 로마의 영광을 눈 앞에 펼쳐 보인 후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한편 레스피기는 1926년 1월 손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을 지휘하여 이 곡을 무대에 올렸을 때, 각 곡에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