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리음악

다닐 샤프란 (Daniil Shafran, 1923~1997)

想像 2008. 8.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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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닐 샤프란 (Daniil Shafran, 1923~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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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닐 샤프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첼리스트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이었던 아버지 보리스로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여, 14세 때(1937년) 전 소비에트 연방 바이올린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그 상으로 1630년제인 아마티를 받아 그 이후 평생 사용하였다.)

레닌그라드 음악원을 겨쳐(1940년) 모스크바 음악원(1943년)에서 첼로를 연마하고, 부다페스트 평화우호축제 음악 콩쿠르(1949년) 및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1950년)에서 로스트로포비치와 공동우승 그 이후 클래식 애호가들은 다닐 샤프란을 로스트로포비치와 즐겨 비교해서 거론하게 되였다.

그후 런던을 비롯해서 서구 여러 나라와 미국 순회 공연 등등....위와 같은 간단한 그의 경력만 살펴봐도 그가 러시아 최고의 첼리스트로 평가받을 만한 초석을 다져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른바 纛慣茱撞에는 끼어 본 적이 없다. 잘알려진 동세대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와는 달리 망명하지않고 계속 러시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거장이다.

걸핏하면 요란하게 법석을 떠는 나팔수(언론 및 평론가, 기자)들이 그에 관해서는 잠잠했던 탓이다. 그것은 그가 나팔수들의 눈높이 보다는 훨씬 더 높은 곳에 치솟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결코 청중에 영합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쇼맨쉽이라는 천한 의상으로 시선을 끌려고 하는 대신 고고(孤高)한 곳에 표표히 서 있다. 그는 가슴 속 깊은 곳에 타오르는 불꽃을 묻어두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그 내연(內燃)의 불꽃을 분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5번 D장조에서 지축을 진동하면서 끓어오르다가 드높고 찬란하게 비상하는 그 불꽃의 열기를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그는 어느 첼리스트보다도 더 깊이 침잠하여 그 세계의 무한한 대해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타오르는 불꽃은 미진처럼 우리 가슴에 울려오지만, 그 진동의 밀도는 이를 데 없이 짙고 드높다.

다닐 샤프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첼리스트 가운데 하나이며, 여전히 신비의 첼리스트로 남아 있다. 언젠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는 "만약 당신이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에 감동을 받았다면 샤프란의 연주를 들을 때까지 기다리시오"... 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진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첼리스트가 러시아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완벽한 기교에 우수어린 선율미가 특징인 그의 연주를 좋아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를 만나본 국내 한 연주인의 글에 의하면 첼로의 대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검소한 생활과 멀리 유학온 젊은 음악도에게까지 아주 겸손하게 대하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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