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ude a L'Apres-midi d'un Faune, L.86
Claude Debussy, 1862~1918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어법을 퇴색시키고 독자적인 악곡기법을 창조해서 20세 기를 준비한 드뷔시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요, 완성자로 칭송되고 있는 드뷔시는 1892년 스테파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의 상징시 <목신의 오후>를 음악화하려고 마음먹고, 처음엔 전주곡, 간주곡, 종곡 등 세 개를 계획했으나 실제로는 이 전주곡만을 작곡했다.
덥고 나른한 여름날 오후, 나무 그늘에서 졸던 목신(牧神-Faune)은 잠을 깨어 갈피리를 조용히 불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의 생각은 꿈과 현실을 헤매이면서, 지금 불고 있는 갈피리를 꺾은 시냇가에서 목욕하던 님프(물의 女精)들을 생각한다. 그는 이 몽상의 환영에서 사랑의 정열을 느끼고 이것을 잡으려 하지만, 님프의 환영은 곧 사라지고 그의 욕정은 한층 더 공상을 펴 가다가 마침내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포옹하게 된다...<이 모독과 관능의 유열(愉悅)>... 이윽고 환상은 사라지고 모래 위에 비스듬히 누운 목신은 풀섶에서 다시 졸기 시작하는데, 이 때 막연한 권태가 그의 마음에 엄습해 온다. 대강 이런 줄거리의 시를 음악화한 이 곡은 이 시가 지닌 환상적인 시정을 그윽하면서도 정교하게 살려냄으로써 오늘날엔 근대 음악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악기편성은 플루트 3, 오보에 2, 잉글리시호른,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4, 심벌즈, 하프 2, 현5부의 대편성으로 되어있으나 튜티(Tutti)가 매우 적은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서 비관현악적으로 조차 볼 수 있는 그의 음악성 및 악곡양식을 관현악에서 충분히 가능케 한 그의 독특한 수법을 엿볼 수가 있다.
한편 관현악곡으로서 선적(線的)인 구성을 전혀 갖지 않은 이 곡은 화음조성의 깔끔한 설정과 단편적인 리듬의 모자이크, 독자적인 오케스트레이션 즉 각 악기의 음색의 강조와 짧은 교체, 하프 등의 섬세하고 오묘한 사용으로 매우 유니크한 감각을 풍겨주고 있다. 그리하여 격조높은 화성과 뉘앙스에 가득찬 낭만의 향기로 말미암아 폭넓은 파퓰러리티를 지닌 이 곡은 1894년 12월 프랑스 국민 음악협회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자 유례없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드뷔시는 이곡으로 인하여 확고부동한 명성을 얻었음은 물론 그의 작품도 뚜렷하게 정립되었던 것이다.
먼저 반주없이 나타나는 플루트의 주제는 목신이 부는 갈피리의 곡조를 모방하여 목신의 몽환적인 동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현의 트레몰로 반주를 거느리고, 재차 나타나는 동안 목신은 그 환영에 의하여 관능적인 정열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몽환의 세계에서 욕정이 솟구치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주제B가 오보에를 따라 현으로 연주된다. 특히 그 3마디째의 동기는 첫머리의 주제에 이어 여러번 사용되며 목신의 환상의 일면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제는 소위 전개수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음화적(音畵的)인 변화, 즉 모자이크처럼 오묘하고 섬세한 변화를 지니고 재삼 나타나, 거기에 음영과 부동을 느낄 수 있다.
곡은 이윽고 중간부 클라이맥스의 주제C에 이르는데 이 주제는 이 곡중에서 유일하게 음악적으로 정리된 멜로디로 비너스의 환상은 물론 관능의 달콤한 유열까지 느끼게 하는 주제이다. 이 부분에서 목관의 제주(齊奏), 현의 제주로서 멜로디가 연결되며, 긴장된 낭만적인 튜티는 다른 부분에서 매우 두드러져 있다. 또한 이 부분의 조성은 D플랫장조로서 얼핏 보면 자유분방한 듯 싶으나 역시 충실한 관계조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파곳, 클라리넷, 플루트가 이를 받아 약주(弱奏)로 들려주지만 첫머리의 A주제는 다시 플루트로 나온다. 제현된 A주제는 하프의 아르페지오 위에 처음보다 단3도 높게 나타나고 더구나 리듬도 4/4박자로 바뀌었다.
곧 잇달아 변덕스러운 목관에 의한 삽입 주제가 번갈아 나타나면, pp의 트레몰로 반주가 지탱되어 본격적으로 원형 그대로의 A주제(=갈피리의 주제)가 들려온다. 그러다가 목신의 환상의 꿈도 사라지고 다시 처음 그대로의 울적한 정적이 다가드는데, 특히 마지막 4, 5마디의 하프의 하행 스타일과 호른의 화음이 목신의 백일몽이 걷힌 뒤에 오는 울적한 적막감을 절묘하게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