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리음악

하차투리안 [Aram Il'ich Khachaturian,1903 ~ 1978]

想像 2010. 5. 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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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m Il'ich Khachaturian,1903 ~ 1978


러시아 출신의 명 작곡가이자 지휘자이기도 한 아람 하차투리안은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등과 함께 가장 러시아다운 토착적인 음악세계를 보여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차투리안은 그루지야의 가난한 아르메니아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음악을 좋아했지만 아버지가 제본공이어서 집안은 언제나 가난으로 찌들려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하차투리안은 18세가 되는 1921년에 아르메니아 연극연구소의 사람들과 함께 모스크바에 나가서 체류하던 중에 생각지도 않았던 우연한 기회에 음악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22년에는 모스크바의 네신(Gnesin)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정식 음악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후 29년 졸업과 동시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 미야스코프스키에게 작곡을 배웠고, 체계적인 역량을 쌓은 후 34년에 이 학교를 졸업했다. 하차투리안의 존재를 크게 알린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것은 36년, 그러니까 그가 33세 가 되던 때이다.

젊은시절에는 당대의 서양음악, 특히 모리스 라벨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교향곡 1번(1935)과 이어지는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영향에서 벗어나 민족음악적 유산에 눈을 돌려 아르메니아 민속음악, 러시아의 그루지야 민요, 터키·아제르바이잔 등의 민속음악 전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향곡 2번(1943)은 볼셰비키 혁명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되었다. 다른 작품들로는 교향 모음곡 〈가면 무도회 Masquerade〉(1944,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희곡에 대한 부수음악), 발레 곡 〈행복 Happiness〉(1939), 〈스파르타쿠스 Spartak〉(1953), 교향곡 3번, 바이올린 협주곡(1940), 첼로 협주곡(1946)을 비롯해 많은 소품이 있다.

2차례 레닌상을 받았고, 아르메니아 공화국 국가도 작곡했고 영화음악과 극 부수음악도 작곡했다. 1948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와 함께 부르주아지적 경향을 띤 음악을 작곡했다는 이유로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의해 기소되었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1953년 스탈린이 죽자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기소에 이의를 제기했다. 1954년 소련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으며, 1959년에 레닌상을 받았다. 그의 가족은 소련의 문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아내 니나 마카로바와 조카 카렌 하차투리안도 작곡가이다
 
지휘자로서도 활동했으나 거의 대부분 자신의 작품을 위주로 지휘를 한 것도 여타 러시아 지휘 및 작곡가들과 다른 점이랄 수 있다. 하차투리안은 75번째 생일을 앞두고  1978년 5월 1일 모스크바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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