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클래식음악/드뷔시·라벨·포레·사티

드뷔시 : 관현악을 위한 영상, L.122 [The Cleveland Orchestra · Pierre Boulez]

by 想像 2024. 5. 27.
반응형

Images for Orchestra, L. 122

Claude Debussy, 1862~1918

 

The Cleveland Orchestra · Pierre Boulez / Debussy: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Images Pour Orchestre; Printemps (Suite Symphonique) ℗ 1992 Deutsche Grammophon GmbH, Berlin

 

클로드 드뷔시는 교향시 [바다]가 성공적으로 초연된 직후인 1905년경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1912년에 되어서야 비로소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관현악곡인 영상을 완성했다. 그는 1905년과 1907년에 각각 세 개의 곡으로 구성된 피아노를 위한 [영상 1집과 2집]을 이미 작곡한 바 있는데, 이 연장선 상에서 보면 관현악을 위한 영상은 3집에 해당하지만 작곡 과정이나 작곡가의 의도를 고려하여 일반적으로 관현악을 위한 영상이라는 독립적인 제목으로 불려진다.

 

피아노를 위한 두 권의 영상은 이후 역시 두 권으로 구성된 스물네 곡의 전주곡집을 작곡하기 위한 사전 작업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작품으로서, 이전 피아노 작품인 판화에서 구체화시킨 사물에 대한 상징적이고도 추상적인 이미지와 이국적인 색채감을 음악적으로 완성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드뷔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세 번째 영상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원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작곡하고자 했지만 1906년 출판업자인 듀랑에게 보낸 편지에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을 적은 바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작곡가는 피아노를 벗어나 자신의 음악 기법과 표현력을 확장하고 싶었던 듯하다.

 

1899년에 완성한 녹턴은 세 개의 악장이 내용상으로나 구성상으로 긴밀한 연속성을 갖고 있는 반면, 이 관현악을 위한 영상의 세 개의 악장은 각기 독립된 내용으로서 초연도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판화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평소 이국적인 분위기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각기 영국, 프랑스, 스페인 3국의 독특한 인상을 오케스트라로 옮기고자 했다. 첫 곡은 ‘지그’로서 영국을 돌발적인 명랑함으로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는 나라로 보는 프랑스인의 전형적인 관점을 반영한 표현주의적인 음악이고, 두 번째 곡인 ‘이베리아’와 세 번째 곡 ‘봄의 론도’는 스페인과 프랑스가 속한 이베리아 반도의 민요와 밝은 풍경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입체파적인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1악장 지그(Gigues)

 

첫 악장에 해당하는 ‘지그’는 이 세 악장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작곡되었다. 1909년부터 1911년 사이에 작곡되어 1913년 1월 26일 앙드레 카플레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전체적으로 쾌활하지만 집요한 지그 리듬이 스코틀랜드를 연상시키는 우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에 쌓여있는 모습을 띄고 있다. 조성적으로 모호한 도입부가 제시된 뒤 오보에 다모레가 연주하는 애조 띈 민요풍의 선법적인 선율이 등장한다.

 

금관과 현악의 겹리듬적인 유니즌과 총주, 실로폰과 목관악기들의 불길한 울림을 따라 음악은 변덕스럽게 고조되다가 포르티시모로 표현되는 클라이맥스로 이어진 뒤, 피콜로의 절망적인 외침과 오보에 다모레의 회상적인 선율이 등장하여 이전보다 더 고통스럽고 침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무리 짓는다.

 



2악장 이베리아(Ibéria)

 

2악장에 해당하는 ‘이베리아’는 콘서트에서 독립적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서, ‘큰 길과 작은 길에서-밤의 향기-축제의 아침’, 이렇게 의 세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3부작 안의 또 다른 3부작이다. 첫 악장 ‘지그’나 마지막 ‘봄의 론도’가 각각 영국적인 것, 프랑스적인 것을 충분히 연상시키지 않는 것에 비해 이 ‘이베리아’만큼은 그 리듬과 색채가 너무나 스페인적이어서 빛과 음색, 리듬을 통한 생명력의 개화를 충분히 느끼게끔 해 준다. 1908년에 작곡되어 1910년 2월 20일 초연되었다.

 

첫 곡 ‘큰 길과 작은 길(Par les rues et par les chemins)’에서는 캐스터네츠의 음향을 바탕으로 현악기가 스페인 리듬을 위풍당당하게 연주하며 클라리넷과 다른 목관악기들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을 자유롭게 노래한다. 드뷔시가 창조해낸 유연한 선율과 개방적인 화성, 음악 그 자체의 목적으로 사용된 음색이 이베리아 반도의 눈부신 강렬함과 원색적인 색깔, 거친 듯 열정적인 대비를 결정적으로 장식한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묵직하고 축축한 분위기의 녹턴에 해당하는 두 번째 ‘밤의 향기(Les Parfums de la nuit)’는 남국의 관능적인 밤을 연상시키는 대목으로서 인상주의적이라기보다는 리얼리티 넘치는 밤의 정경이 펼쳐진다. 특히 권태롭고 숨이 막히는 듯한 현악기의 아바네라 리듬과 동경을 갈구하는 오보에 및 잉글리시 혼의 에로틱한 음향적 효과가 돋보이며 약음기를 낀 트럼펫과 플루트, 독주 현악기가 첫 악장의 주제를 상기시키며 밤의 권태로움을 조용하게 내몰기 시작한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2부 첫머리의 녹턴을 예견하는 듯한 이 부분은 허무함과 지루함을 죽음과 휴식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드뷔시의 본능적인 음악어법과 색채감이 잘 나타난다.

 

 

 

‘축제의 아침(Le Matin d'un jour de fête)’은 밤의 잔재를 급습하기 시작한 새벽의 빛을 상징하는 짧은 경과부로 시작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드뷔시는 “내가 작곡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했다. 바다의 첫 도입부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의 지하 탈출 장면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밤에 대한 미련과 향수를 담으면서도 밝은 곳으로 되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담아낸 명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점점 동이 터오며 신선한 기운과 활력 넘치는 리듬으로 밤을 완전히 굴복시킨 뒤 급작스럽게 소란스럽고 정력적이며 유머레스크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현악군이 스페인적인 리듬과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클라리넷의 고역과 더불어 금관, 타악기, 하프가 차례로 가세하며 음악을 승리의 클라이맥스로 이끈다.

 

 

 

3악장 봄의 론도(Rondes de printemps)

 

1908년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1910년 3월 2일 작곡가의 지휘로 초연된 마지막 악장인 ‘봄의 론도’는 분위기와 기법 면에 있어서 가장 섬세하고 마법적이며 고도로 정교한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에 대한 묘사, 즉 드뷔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 대한 일종의 암시로서 그가 좋아했던 두 곡의 민요 즉 자장가인 Do, do, l’enfant do와 다섯잇단음표 리듬의 불안정한 반주 위에 등장하는 n’irons plus au bois(우리는 숲 속에 가지 않을 거에요)가 바순과 혼에 의해 제시된다(특히 두 번째 민요는 피아노를 위한 판화(1903년작)에서 이미 사용한 바 있다). 미완성의 소묘를 연상시키는 이 ‘봄의 론도’는 명랑하고 명확한 상승부와 으뜸음에 바탕을 둔 반음계적인 하강부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체계가 없는 발전적 구조로서 마치 선회하는 움직임 같은 느낌을 준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리듬과 선법 모두 찬란의 봄의 소리로 변형되어 가벼운 충격과 깊은 우수를 머금은 채 단정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드뷔시, 관현악을 위한 영상 [Debussy, Images pour orchestre] (클래식 명곡 명연주, 박제성)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