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No. 39 in E-Flat Major, K. 543
Wolfgang Amadeus Mozart
모차르트 후기의 찬란한 ‘3대 교향곡’ 중에서 첫 작품인 [E♭장조 교향곡(제39번)]은 상대적으로 외면당해온 감이 없지 않다. 사람들은 대개 낭만적 파토스가 넘실대는 [G단조 교향곡(제40번)]이나 인상적인 별명(‘주피터’)과 눈부신 피날레를 가진 [C장조 교향곡(제41번)]에 주목하고 열중하는 반면, 이 교향곡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매력과 가치는 결코 다른 두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이 교향곡은 세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첫 악장이 느린 서주를 지니고 있고, 모차르트의 교향곡들 가운데 유일하게 오보에가 배제되어 있다. 무엇보다 세 곡 가운데 가장 고전적이면서 우아한 기품을 지닌 것으로서, 그 유려한 선율과 정연한 리듬, 다채로운 음색과 풍부한 울림이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조화는 가히 천의무봉에 비견될 만하다.
그런데 모차르트가 이 곡을 쓰던 무렵의 상황을 돌아보면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3대 교향곡’은 1788년 6월에서 8월에 걸쳐, 고작 6주 사이에 차례대로 완성되었는데, 세 곡이 제각기 다른 성격과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형식적·기법적·정서적으로 고전파 교향곡의 가장 드높고 심원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 ‘E♭장조 교향곡’은 셋 중 가장 밝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787년,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하던 시기를 전후하여 모차르트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우게 된다. 우선 5월에 아버지 레오폴트가 타계했고, 그가 주최하는 연주회의 관객이 급작스레 줄어들어 공연 자체를 접어야 할 지경에 이르는가 하면, 만만찮은 산고 끝에 탄생시킨 [돈 조반니]에 대한 반응도 기대에 못 미쳤다. 이 오페라는 프라하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빈에서는 체면치레 정도만 했다.
수입이 줄어들자 모차르트는 경제난을 타개할 방도를 모색했다. 한 해 중 몇 달은 생활비가 덜 드는 빈 외곽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고, 궁정 실내악 작곡가라는 직무도 맡았다. 그러나 그것은 황실에 봉사하는 공직이긴 하지만 연중행사로 궁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사용될 춤곡 정도만 작곡하면 되는 자리였고 보수도 넉넉지 않았다.
교향곡 39번 작곡 당시 모차르트의 삶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그 모든 사태의 배경에는 전쟁이 있었다.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전쟁에 오스트리아가 말려들었던 것이다. 남자 귀족들은 전선으로 향했고, 황실에서 예술 부문에 지급하던 보조금도 삭감되었다. 그 여파로 극장들이 문을 닫고 극단들도 해산했다. 물가는 급등하고 황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으며, 1788년에는 빈 시가지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빵집들이 습격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런 난국 속에서도 모차르트는 상류사회의 일원다운 품위를 유지하려 했으나, 그의 존립기반이 흔들리는 마당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중병에 걸렸고 아이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저세상으로 떠날 참이었다. 결국 그는 돈을 꾸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애걸복걸하는 편지를 날렸다. 당시 그가 프리메이슨 동료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수많은 청탁 편지들 중 하나에는 그의 처참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지경으로 살고 있어서 뛰쳐나가 목 놓아 울 수도 없었고 편지를 쓸 수도 없었네. 가엾은 내 아내는 실로 냉철한 평정 속에, 회복이든 죽음이든 받아들이겠다는 완전히 체념한 모습을 보이고 있네. 그러나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네.”
비록 그의 삶은 비참하고 궁핍했지만, 그의 음악은 광명과 풍요를 지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에만 품을 수 있는 지고의 이상 또는 꿈과도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 교향곡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마치 천상의 그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숭고하고 영화로운 광휘를 머금고 있다.
한편으로 이 곡은 모차르트 특유의 ‘프리메이슨 정신’이 반영된 작품으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일례로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이 곡을 ‘신전의 불빛 속으로 들어가는 타미노’에 비유하기도 했다. 확실히 곡 첫머리의 느린 서주에서 장엄하고 우아하게 울려 퍼지는 E♭장조 화음은 오페라 [마술피리]의 그것을 환기시키는 면이 있다.
Berliner Philharmoniker · Karl Böhm
제1악장 Adagio - Allegro
첫 악장은 25마디에 이르는 장대한 서주로 시작된다. 투티의 장중한 화음이 부점리듬에 실려 당당하게 울려 퍼지고 그 사이로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음계가 대비를 이루는 이 서주는 화성적으로 풍부하면서 긴장감이 넘친다.
제시부로 들어가면 먼저 우아하고 기품 있는 제1주제가 제1바이올린에서 흘러나오고, 당당한 행진곡 풍의 악구가 뒤따른다. 제1바이올린과 목관이 교대로 나오는 제2주제는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고, 뒤따라 나오는 악구는 구름을 밟으며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는 듯하다. 발전부는 서주와 연계된 경과부의 소재를 바탕으로 구성되며, 이후는 소나타 형식의 정형대로 재현부, 종결부를 거쳐 간결하게 마무리된다.
제2악장 Andante con moto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된 이 악장에서는 두 개의 주제가 교대로 등장한다. A♭장조의 제1주제는 온화하고 안정된 느낌인데 반해, f단조의 제2주제는 불안하고 격정적이다. 두 주제의 대비와 얽힘, 그리고 단조부에 강렬함을 더하는 싱커페이션과 카논 기법이 인상 깊다.
제3악장 Menuetto (Allegretto)
이 궁정풍의 미뉴에트 악장은 모차르트가 남긴 미뉴에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현악기의 스타카토로 펼쳐지는 미뉴에트 주제는 춤곡적인 성격보다는 교향악적인 역동성을 지니고 있으며, 중간에 클라리넷의 2중주가 이끄는 목관 세레나데 풍의 우아하고도 천진난만한 트리오가 삽입되어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제4악장 Finale (Allegro)
이 활달하고 유쾌한 피날레 악장은 하이든 풍의 유머로 가득하다. 출발과 동시에 매끄럽게 도입된 제1주제가 전편을 지배하며, 제2주제 역시 제1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겉보기엔 하나의 주제를 구심점 삼아 다양한 소재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론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재들을 교묘하게 통일시킨 치밀한 구성의 결과이다. 투명한 울림의 경쾌한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익살에 미소 짓게 되는 흥미진진한 피날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차르트, 교향곡 제39번 [W. A. Mozart, Symphony No.39 in E♭ Major, K.543] (클래식 명곡 명연주, 황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