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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하이든

하이든 : 교향곡 제100번 ‘군대’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Sir Colin Davis]

by 想像 202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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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mphony No.100 in G major ‘Millitary’
Franz Joseph Haydn, 1732∼1809


하이든에게 있어서 30여 년 동안 가장 중요한 후견인이었던 니콜라우스 후작이 1790년 세상을 떠나자 상황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니콜라우스 후작의 후계자이자 아들인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는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하이든의 연금과 지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무 것도 명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 하이든은 런던의 흥행사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요한 페터 잘로몬(1745~1815)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작곡가로서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 제안은 오페라와 신작 교향곡, 연주회 참석 등등에 각각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서 단 런던을 방문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1790년 12월 15일 58세의 하이든은 잘로몬을 따라 영국을 방문했다.

1792년 6월까지 런던에 체류하며 하이든은 6곡으로 구성된 일명 ‘런던 교향곡’(교향곡 93번부터 98번)을 작곡했다. 런던에서 돌아온 하이든은 베토벤을 소개받아 빈으로 초대했고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으며 또한 많은 영향을 받았다.이렇게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은 이후 1794년 1월부터 1795년 8월까지 두 번째로 런던에 체류하며 두 번째 ‘런던 교향곡’ 세트(99번부터 104번)를 작곡, 첫 번째 런던 방문 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6곡은 하이든에게 많은 성공과 보답을 안겨준 마지막 교향곡들로서, 본질적으로 푹스와 칼다라에게서 비롯한 오스트리아-빈 음악 전통을 견지하면서 청년기의 기발함, 에스테르하지 시대의 장중함과 침착성, 여기에 새로운 실험과 창조적인 발전을 한꺼번에 통합한 증거이기도 하다.

안톤 에스테르하지가 1794년 1월 22일 비엔나에서 급서한 이후 후계자인 니콜라우스 2세는 아버지의 계산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다시 한 번 궁정 오케스트라를 일으키기 위해 하이든을 카펠마이스터로 초빙했고, 이를 받아들인 하이든은 1795년 8월 15일 런던을 떠나 다시금 비엔나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현악 4중주와 스코틀랜드 및 웨일즈 포크송, 피아노 트리오를 비롯하여 ‘천지창조’(1798)와 ‘사계’(1801)와 같은 대규모 성악 작품들을 작곡했는데, 104번 ‘런던’ 교향곡 이후 다시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았다. 궁정이 요구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비엔나의 청중들이 그다지 교향곡 장르를 좋아하지 않았던(모차르트도 비엔나로 옮긴 다음 교향곡 작곡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점 또한 하이든이 더 이상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총 12곡으로 구성된 ‘런던 교향곡’ 세트는 고전주의 교향곡 양식의 훌륭한 표본으로서 하이든이 진정한 교향곡 작곡가로서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탄탄한 기반을 갖추었음을 알려준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작곡하며 발전시켜온 교향곡들을 일별해 보면 현악 4중주나 피아노 트리오, 피아노 소나타에서 교향곡에서 실험했던 소나타 형식의 발전된 모습을 고스란히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하이든이 완성시킨 느린 서주가 붙은 첫 알레그로 악장으로 시작하는 4악장 형식은 이후 20여 년 동안 교향곡 양식의 고정된 구조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가 교향곡 내에서 사용한 대비와 발전의 효과는 베토벤과 더불어 그가 진정으로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였음을 말해주는 증거로서, 이후 19세기 교향곡 작곡가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가 조금만 더 교향곡 장르에 관심을 가졌다면 ‘런던 교향곡’ 세트 이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교향곡 100번 ‘군대’는 교향곡 101번 ‘시계’와 더불어 1793년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부터 작곡하기 시작하여 1794년 런던에서 작곡을 끝낸 작품이다. 특히 6곡의 후기 ‘런던 교향곡’ 가운데 ‘군대’만이 유일하게 초연 당시(1794년 3월 31일) 잘로몬이 작품을 홍보하기 사용한 별명에서 기인한 것이다. 두 번째 런던 교향곡 세트 가운데 첫 곡인 99번 교향곡처럼, 이 ‘군대’ 교향곡 또한 서주의 풍부한 울림과 리듬의 강렬함, 트럼펫, 트라이앵글, 큰북, 심벌즈 등의 놀라운 효과, 막 교향곡에 도입된 악기인 클라리넷의 풍부한 음향이 돋보인다. 그런 까닭에 이 교향곡은 [천지창조] 이전 하이든에게 있어서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Sir Colin Davis [Haydn: 6 "London" Symphonies]

 

1악장 Adagio-Allegro

 

소나타 형식으로서 현악을 중심으로 아다지오의 서주를 개시하고 조성이 바뀌어 웅장함과 사뿐함을 오가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서주에 이어 플루트와 오보에가 등장하여 알레그로 악장으로서의 주제를 흥겹게 제시한다. 현이 목관악기의 주제를 모방하며 곧장 투티가 등장하는데, 즐겁고 흥겨운 이 목관악기에 의한 주제는 이 악장의 주인공으로서 전개부와 코다에 이르기까지 반복하여 등장한다. 2주제와의 대비는 베토벤이 후일 초기 교향곡에서 사용한 것에 비견할 만한 훌륭한 효과로서 이 ‘군대’ 교향곡의 독특한 인상을 결정짓는다.

 

 

2악장 Allegretto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1악장의 1주제에 버금가는 발랄하고 따스한 주제를 연주하며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이를 반복한다. 이 교향곡이 ‘군대’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2악장 때문으로서, 주제선율의 단순한 리듬이 행진곡을 연상케 하기도 할 뿐더러, 중간에 조성이 바뀌는 부분에서 이전까지 교향곡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타악기들이 등장하여 군대적인 효과를 배가시킨다. 이후 트럼펫이 군대신호를 연상케 하는 시그널을 제시한 뒤 트라이앵글과 큰북, 심벌즈 등등이 가세한 오케스트라의 격렬한 총주가 플루트의 주제선율과 서로 대비를 이루며 재현되고 코다로 마무리한다.

 

특히 이 악장에 사용된 행진곡 리듬은 하이든이 1786년 나폴리 왕을 위해서 작곡한 두 대의 리라를 위한 협주곡 3번의 로망스 악장의 주요 성부를 거의 그대로 대편성용으로 오케스트레이션한 것이다. 단 발전부의 프레이즈 몇몇 부분과 트럼펫의 팡파르, 팀파니 롤로 시작하는 인상적인 코다 부분만을 추가했을 뿐이다.

 

 

3악장 Minuetto(Moderato)

 

리드미컬한 미뉴엣 악장으로서, 경쾌한 리듬이 바이올린 파트를 통해 진행되고 플루트와 오보에가 이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전형적인 하이든 미뉴엣 악장으로서 음향적으로도 대단히 호화롭다.

 

 

4악장 Finale Presto

 

소나타 형식이기는 하지만 재현부의 제2주제에 중심이 놓여 있다. 이 피날레 악장에 등장하는 주제들이 19세기 초반에 등장한 대부분의 영국 민속무곡집에 실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이 당시 영국에서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하이든, 교향곡 제100번 [Haydn, Symphony No.100 in G major ‘Millitary’] (클래식 명곡 명연주, 박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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