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미술작품

[명화감상] 카라바조의 '성(聖)마태의 소명 (The Calling of St Matthew)', 1599-1600

想像 2023. 8. 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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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마태의 소명 (The Calling of St Matthew), 1599-1600, San Luigi dei Francesi, Rome


서양미술사에서 바로크는 르네상스에 이어서 나타난 양식으로 1600년경에서 대략 150여 년간 지속되었다. 바로크의 양식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화가는 카라바조(1573∼1610)이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인데, 북부 이탈리아 카라바조라는 시골마을 출신이기 때문에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다. 어린 시절 롬바르디아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1598년경 로마로 건너와 역사화, 풍속화, 정물화 등 회화의 여러 장르를 기웃거리다 1599년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한 대형 작품을 의뢰받으면서 종교적인 주제에 집중한다.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해 그린 세 점의 유화작품 중  ‘성(聖)마태의 소명 (The Calling of St Matthew)'은 카라바조의 대표작이자 바로크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그림은 로마의 산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에 걸려 있다

빛이 제대로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공간. 다섯 명의 사내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돈을 세고 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손을 들어 마태를 가리킨다. 위엄 있는 그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한 마태는 “저 말이십니까?”하고 반문하듯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마태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던 세리였다. 당시 세리는 악랄하게 세금을 뜯어냈기 때문에 모두가 경멸하던 직업이다. 물질적 탐욕의 대명사이자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초라한 세리 마태를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로 불렀던 것이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9장 9절은 이 장면을 고작 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지만, 카라바조는 바로크적 상상력으로 성서의 이야기를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광경으로 재구성하였다.

 

수척한 얼굴에 거친 옷 아래로 맨발을 드러낸 예수 그리스도는 베드로와 함께 마태를 향해 걸어 들어온다. 예수의 겸허한 등장은 화면 속에 강렬한 빛을 불러일으켰다. 천상의 빛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지상의 빛을 극적으로 압도하며, 세속적 욕심에 잠겨 있는 어둠을 갈라놓는다.

신성한 구원의 세계와 공허한 탐욕의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마태를 부르기 위해 고요하게 들어 올린 예수의 손이다. 카라바조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천장화 중 갓 태어난 아담의 손을 본떠서 예수의 손을 그렸다. 아담이 신의 손을 통해 생명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는 마태에게 새로운 소명을 불어넣는 중이다. 다른 이들은 아무도 예수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지만,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은 마태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켜 부름을 받았음을 확인한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바로크적 스펙터클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빛이다. 어둠이 지배적인 공간을 강렬하게 침투하는 직선적인 빛은 극적인 명암대비를 만들어내 묘사된 장면에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카라바조의 빛은 공간 전체를 밝히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광원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빛은 그림에 묘사된 인물들을 읽을 수 있도록 시선의 통로를 마련해 준다. 그리스도는 짙은 어둠에 둘러싸여 있지만 얼굴과 손을 밝혀주는 강한 빛으로 인물의 심리는 물론 그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지나친 빛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인물들의 얼굴을 강하게 비춰주고 있어 이들의 표정을 빠짐없이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빛을 통한 명암대비가 그림 전체의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그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독특한 화면 구성방식이다. 카라바조는 그림 속 장면을 마치 연극무대처럼 구성한다. 협소한 공간에 인물들을 밀집시킴으로써 집중력 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감상자들의 시선을 산만하게 만들 수 있는 부차적인 요소들은 과감하게 생략되었다.

 

카라바조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는 명암표현법의 창시자로 그림 대부분을 암흑에 가깝도록 어둡게 처리하고 주인공과 그 주변에 빛이 떨어지도록 하는 기법을 처음 시도하였다. 이는 연극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대상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노리는 방법이다. 이는 인물표현이 아닌 내면적 심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며 인간의 내면 표출에 대한 예술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탄생하게 된 기법이다. 후에 렘브란트는 카라바조에게 크게 감명받아 그의 작업에 빛을 주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라바조의 회화적 연출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성서가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는 AD 30년경 중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림 속 인물들은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의상을 입고 있다. 이것은 그림에 현재성과 현장성을 불어넣기 위한 방법인데, 성서의 이야기가 마치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카라바조는 가톨릭교회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기독교적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추구하는 화풍을 버리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그는 심지어 16세기 뒷골목을 오가는 불량배, 거지, 매춘부 등을 그림 속에 끌어들여 그들을 예수로, 성자로, 막달라 마리아로 둔갑시켰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그 어디에도 인간을 초월한 신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가장 바로크적인 요소는 현실의 건축적 공간과 빛을 회화 속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성(聖)마태의 소명 (The Calling of St Matthew)’작품이 걸려 있는 예배당은 실제로 그림의 오른쪽으로부터 빛이 들어오는 구조다. 그림 속의 신비로운 빛이 현실의 공간까지 연장된 셈이다. 화가는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실제의 빛을 알고 있었고, 그 빛을 그림 속으로 가지고 들어와 현실과 그림,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처럼 정형화되지 않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상식을 뛰어넘는 극적인 방법을 통하여 르네상스적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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