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베토벤

베토벤 : 교향곡 전곡 (The 9 Symponies) [Orchestre Révolutionnaire et Romantique · John Eliot Gardiner]

想像 2023. 2. 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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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9 Symponies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Orchestre Révolutionnaire et Romantique · John Eliot Gardiner / Beethoven: 9 Symphonies

교향곡 제1번, Op.21

베토벤은 여러 장르를 섭렵한 후 마침내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의 첫 번째 결실은 이전과 더 이후의 곡들에 비해 왠지 딱딱하다는 평을 듣곤 한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교향곡 1번에는 환희와 놀라움이 가득하다. 느린 1악장은 주음을 으뜸음으로 하지 않는 조성인데 이는 곧장 해결되는 화음으로 시작하며, 2악장은 느린 악장답지 않게 리듬감이 넘치는 가운데 팀파니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3악장은 박력과 우아함을 겸비한 스케르초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날레의 주제는 상승음계로 시작해 점차 유머러스하게 1악장 서두 부분과 결합한다.


교향곡 제2번, Op.36

베토벤이 두 번째 교향곡을 쓸 무렵 그를 절망에 빠뜨리고 자살까지 생각하게 한 청력 상실이 시작되었다. 이는 그와 관련된 수많은 역설 중 하나이다. 개인적인 불행에도 불구하고 이 교향곡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희망적이고 감정이 고양된 곡이기 때문이다. 느린 1악장은 빠른 세 악장에서 볼 수 있는 모험적이고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한편 2악장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서정적 분위기로 시대를 초월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중 가장 통찰적인 교향곡 제2번은 그 양식이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베토벤의 교향곡 중 가장 교향곡 제1번처럼 자제하는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바야흐로 베토벤은 힘과 에너지가 넘치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특히 1악장 종결부의 클라이맥스는 베토벤의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환희에 넘친다.


교향곡 제3번《영웅》, Op.55 

베토벤 관현악곡의 신기원을 연 작품인 [영웅]교향곡은 원래 나폴레옹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던 당시 나폴레옹은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황제로 칭하자, 베토벤은 곡의 의미를 ‘위대한 사람의 기억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영웅적인 교향곡’으로 바꾸어 버렸다. 웅장한 1악장은 앞으로 나올 드라마, 질서, 불협화음의 씨앗을 뿌리고 이 씨앗들은 끝없는 환희와 발전을 꽃피운다. 2악장의 장송 행진곡은 고통스러운 슬픔뿐만 아니라 웅장함과 승리의 기억들도 함께 전한다. 스케르초는 중간의 호른 3중주가 돋보이며, 베토벤이 초기 작품에서 사용했던 주제의 자유로운 변주 부분인 피날레가 곡을 마무리한다.

교향곡 제4번, Op.60

베토벤의 짝수 번호 교향곡들 중에서도 [교향곡 제4번]은 그 뛰어난 작품성에 비해 그다지 널리 연주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이 곡은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 중에서도 영웅적이고 남성적인 힘으로 가득한 [교향곡 3번] ‘영웅’과 [교향곡 5번] ‘운명’ 사이에 낀 작품이기에 작곡가 슈만은 이 교향곡을 가리켜서 “두 명의 북구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스의 미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4번]에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1악장에나 나타나는 혼란스럽고 신비로운 서주가 나오는가 하면, 하이든 풍의 활기찬 음악도 들을 수 있으며, 아다지오 악장의 숭고한 아름다움과 베토벤의 장난기와 유머도 나타나고 있어 무척 변화무쌍하다. 이는 하이든의 고전주의 교향곡의 명랑한 활기와 유머감각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베토벤이 이 곡에서 보여준 것은 하이든의 고전주의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세련된 고전주의라 할 수 있다.

교향곡 제5번《운명》, Op.67

베토벤 교향곡 5번, 흔히 '운명교향곡'이라고 불리는 곡이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베토벤이 한 말에서 나왔다. 어느 날 베토벤의 제자가 1악장 서두의 주제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라고 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운명'교향곡이라는 별칭은 다른 나라에서는 쓰이지 않고,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그렇게 부른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큰 시련을 겪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베토벤의 귀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하는 등 그가 사는 세상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니 이 교향곡을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와 환희를 그렸다고 해석하는 것도 그럴 듯하다. 곡을 들으면 1악장에서 시련과 고뇌가, 2악장에서 다시 찾은 평온함이, 3악장에서 쉼 없는 열정이, 4악장에서 도달한 자의 환희가 느껴진다.

교향곡 제6번《전원》,Op.68 

교향곡 제5번과 같은 시기에 쓰여 같은 연주회에서 초연을 가진 교향곡 제6번은 베토벤 특유의 힘과 열정적인 모습 그리고 평소보다 더 우아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잘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추앙 받고 있다. 다섯 악장 모두가 저마다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곡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다. 몰아치는 폭풍우에서는 베토벤이 특히 잘 표현하는 공포스럽고 격정적인 톤이 휘몰아쳐 나오지만, 나머지 악장에서는 행복, 평화로움, 흥겨움, 감사가 잘 표현된다. 그래서 간혹 베토벤의 스타일이 너무 정력적이고 강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 곡을 선호한다. 특히 1악장의 변화무쌍하게 얽히고 설킨 구조를 튼튼하게 받쳐 주는 정적 내지는 최면을 걸 듯 점점 동요하는 화음의 전개, 2악장의 마지막 부분에 들리는 새 소리, 폭풍우에 휘몰아치는 바람과 천둥소리 등이 기억에 남는 악절이다.

교향곡 제7번, Op.92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 교향곡 제7번이야말로 환희와 낙관적인 분위기가 가장 충만한 작품이다. 2악장(알레그레토)에서 느껴지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과 달콤한 위안을 제외하면, 이 곡은 전반적으로 유연하고, 발랄하고, 의도적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으며 감정이 무척 고양되어 있다. 적당한 속도의 1악장은 강약과 음계를 모두 폭이 넓게 사용해서 진지한 의도를 잘 살렸다. 이 악장은 힘이 넘치는 분위기에서 생기발랄한 비바체로 옮겨 간다. 베토벤 생전에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 악장 중 하나였던 알레그레토가 끝나면, 박력이 넘치면서 장난기마저 느껴지는 스케르초가 나온다.

스케르초는 순례자의 승리로 들리던 트리오와 교대로 두세 번 정도 나온다. 이 부분이 악장의 메인 템포와 얼마나 확연한 대조를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항상 의견이 분분했다. 마지막의 알레그로 콘 브리오에서 베토벤은 가장 유쾌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음악을 끌고 들어간다. 그래서 이 부분을 들으면 살아 있음에 대한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교향곡 제8번, Op.93 

베토벤은 거의 같은 시기에 작곡을 마친 교향곡 제7번과 교향곡 제8번 중에서 8번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의견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아마 7번이 베토벤 음악의 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8번은 신구의 조화가 절묘하다. 특히 안쪽의 두 악장이 그러하다. 3악장에서 베토벤은 주로 사용했던 빠른 스케르초 대신 오래된 스타일의 미뉴에트로 회귀했다. 한편 2악장에서는 당시 처음 출현한 메트로놈의 똑딱거리는 소리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바깥의 악장들은 우아함, 장난기, 위트에 무뚝뚝함도 엿보인다. 피날레는 구조가 독특한데, 듣는 이를 당황하게 하면서 감정을 고무시키기도 한다.

교향곡 제9번《합창》,Op.125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은 환희와 인류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4악장에서 독일의 시인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합창이 나오는 까닭에 ‘합창’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작품은 작곡가 베토벤이 완성해낸 마지막 교향곡이자 오랜 세월에 걸쳐 작곡된 역작이기도 하다.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합창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변화무쌍한 교향곡에 청중들은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베토벤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위대한 교향곡이 초연되는 그 순간 단지 참관자의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날 음악회의 실질적인 지휘자는 미하일 움라우프(Michael Umlauf, 1781~1842)였고 악장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그나츠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 1776~1830)도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베토벤은 지휘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중요한 부분에서 지시를 내리기도 했으나 불행히도 음악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제1악장의 신비스러운 도입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교향곡의 첫 도입부를 듣는 순간, 베토벤 교향곡이라면 으레 크고 웅장하게 시작되리라는 우리의 추측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들릴 듯 말 듯한 호른의 지속음과 현악기의 살랑거리는 트레몰로가 슬그머니 교향곡의 시작을 알린다. 1악장의 애매모호한 도입부와 명쾌한 주제는 마치 혼돈 속에서 우주가 생성되는 모습과 같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도입부는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파격적인 것이다.

4악장이 시작되면 오케스트라의 서주를 지나 베이스 독창자가 일어나 “오, 벗이여! 이런 곡조는 아니오! 더 즐겁고 환희에 찬 곡조를 노래합시다!”라 말한다. 그러면 지극히 단순하지만 강한 설득력을 지닌 환희의 선율이 시작된다. 그 뒤를 이어 터키풍의 행진곡과 느리고 장중한 음악, 환희의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변주, 소나타와 협주곡 형식 등이 합쳐지면서 거대한 음악적 통일이 성취된다. ‘모든 인간은 한 형제’라는 환희의 송가를 통해 청중은 모두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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