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20세기 러시아음악

라흐마니노프 : 교향시《죽음의 섬(Isle of the Dead) [Mikhail Pletnev · Vladimir Ashkenazy]

想像 2023. 1. 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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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sle of the Dead, Op. 29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Arnold Bocklin: Isle of the Dead

미술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 많다. 어찌 보면 공간 예술인 그림이나 조각을 시간 예술인 음악으로 둔갑시킨 것이 더욱 큰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음악의 호소력이 때론 미술보다 크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으로는 흔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알려져 있지만, 그림의 분위기를 가장 리얼하게 나타낸 음악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the isle of the dead, op.29)>이라는 교향시를 들 수 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러시아의 세계적 작곡가로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비롯한 성악곡 <보칼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32살 때인 1905년에 작곡한 이 <죽음의 섬>은 무시무시한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도 색다른 것이다. 그가 파리에서 피아니스트로 활약할 무렵 19세기 스위스의 괴기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1827~1901)의 명화 <죽음의 섬>을 보고 감동, 교향시라는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뵈클린의 그림으로서 <바다 구렁이> <해신(海神)>을 비롯한 명화가 많지만, 라흐마니노프가 유달리 <죽음의 섬>을 보고 더욱 큰 영감을 자아낸 까닭은 그가 쇼펜하우어와 같은 염세주의자로서 웃음보다는 오히려 음울한 죽음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토마스 후드라는 시인이 쓴 “이곳이야말로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고요(정적)가 있다. 이곳에야말로 아무런 소리도 있을 수 없는 고요가 있다 ….”라는 소네트(14행으로 된 유럽 서정시의 한 형식)도 생각하면서 이 교향시를 썼다고 한다.

 

화가 뵈클린은 자기의 그림에 관하여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까지도 놀라운 눈을 뜰 만큼 고요(정적)와 침묵의 감명을 틀림없이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그림 속의 고요는 죽은 뒤의 ‘없음(無)’의 세계와도 같이 소름끼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죽음의 섬은 햇빛조차 비치지 않는 쓸쓸한 외딴 섬인데, 그지없이 조용한 바다 위에 도사리고 있다. 날카로운 절벽과 우수에 잠긴 듯한 크나큰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거져 있어 엄숙하기까지 한 이 그림은 참다운 고독을 보여주고 있다. 한 척의 작은 배에 흰옷 입은 카론(저승으로 영혼을 보내주는 일을 함)이 타고 이 무서운 섬으로 향하고 있는 정경은 더욱 큰 전율을 자아낸다.

 

이런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시 <죽음의 섬> 악보에서 주요 음악적 전개를 알아보자. 첫머리는 8분의 5박자라는 변박자(變拍子)의 느리고도 서글픈 하프 연주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섬으로 실어 나르는 카론이 젓는 노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이윽고 첼로가 이 죽음의 섬에 부딪치는 물결을 그렸다고 생각되는 분산화음의 반주형(伴奏型)을 나타낸다. 이 물결의 모티프는 이 곡을 다스리는 가장 아름다운 요소다. 그 사이에 고뇌가 깃든 듯한 바이올린을 배경으로 첼로가 암시하는 그레고리 성가인 <디에스 이레(노여움의 날)>가 단편적으로 어슴프레 들려온다.

 

섬에 가까워지면서 소리가 커지고 움직임이 뚜렷해지며, 이 때까지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죽음의 고통이 나타난다. 이 곡의 중간 부분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갑자기 밝게 나타나지만, 이윽고 우울하고 불안한 분위기에 다시 휩쓸면서 <디에스 이레>가 다시 냉혹하고도 집요하게 들리면서 카론의 배는 섬을 떠나 조용히 멀어져 간다.

 

이 교향시 <죽음의 섬>은 미학에 비추어볼 때 일종의 상징주의적인 정신으로 작곡되었지만, 때로는 인상주의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특히 중간 부분을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법)의 차원에서 보면, 바그너에게서 영향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그너도 염세주의자였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가 더욱 그에게 공감했는지 모르나, 이 교향시를 지배하는 비극적인 요소는 라흐마니노프의 내성적이며 불안한 인간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 교향시를 감상할 때 뵈클린의 <죽음의 섬>(복사판이 많음)을 보면서 들어보면, 놀랍게도 그림이 음악의 흐름에 따라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그림 자체가 생동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그림 <죽음의 섬>을 보았지만, 뵈클린은 교향시 <죽음의 섬>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한편 같은 시대의 독일 작곡가 막스 레거가 뵈클린의 그림을 음악으로 꾸민 것도 있다.(글출처: 김원구·음악평론가)

 

Rachmaninoff: The Isle of the Dead, Op. 29 / Russian National Orchestra · Mikhail Pletnev

 

Rachmaninoff: The Isle of the Dead, Op. 29 ·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Vladimir Ashkena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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