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미술작품

[명화감상] 클림트의 '키스' (1907~1908)

想像 2022. 7. 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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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1862~1918)

The Kiss (Der Kuss)

Oil and gold leaf on canvas, 180 cm × 180 cm,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Austria


 

《키스》(Der Kuss, 1907~1908년)는 오스트리아 상징주의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1907-1908년 황금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금박을 사용하여 화려한 황금빛을 띠는 그림을 그리길 좋아했다. 그의 그림 중 가장 사랑받는 그림이 연인의 입맞춤을 표현한 《키스》이다. 사람들이 이 작품에 매료되는 까닭은 에로틱하면서도 황홀한 아름다움때문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하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1908년 클림트의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되자마자 벨베데레 궁전 오스트리아 미술관은 직접 그림을 구입해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이 그림을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하게 여겨 한 번도 외부로 이동시킨 적이 없다. 벨베데레 궁전이 소장한 클림트 컬렉션 중에서도《키스》는 단연 독보적인 작품이다. 

 

클림트는 19세기 말 모더니즘이 태동하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성공적인 화가였으며, 동시에 여성의 관능미를 거침없이 표현한 에로티시즘 화가로서 논쟁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유화와 금박을 함께 사용한 클림트의 화법은 너무나 유명한데, 황금빛을 나타내기 위해 실제로 값비싼 금박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클림트는 금세공업자였던 아버지에게서 금박을 다루는 기술을 익힌 것으로 보인다. 1903년 이탈리아 라벤나 지역을 여행하면서 우연히 비잔틴 모자이크 작품을 접한 클림트는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후 독특한 자신만의 화법을 개척하며 금박 기술을 활용해 여인의 고혹적인 매력과 사랑의 환희를 주제로 화려하고 자극적인 그만의 화법을 완성한다. 황금빛을 그림에 사용한 그의 절정의 시기를 클림트의 ‘황금시대’라 한다. 그림 《키스》는 그의 황금시대에 그린 가장 빛나는 그림이었다.

 

1907년에 제작한《키스》는 가로 180cm, 세로 180cm의 정사각형 모양의 대작(大作)이다. 캔버스에 유채와 실제 금을 아주 얇게 펴서 바르는 금박 기법(Gold leaf)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게 만드는 웅장한 크기만큼이나 화려한 장식과 금빛 색채가 특징이다.

 

그림의 구성은 어렵지 않다. 꽃이 핀 벼랑 끝에서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있고, 남자는 여자의 뺨에 키스를 하는데, 여자는 황홀한 기분으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얼굴엔 홍조를 띠고 있다. 남성 옷의 검정색 사각 패턴은 남성적 이미지를, 여성 옷의 분홍색 곡선은 여성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이 둘의 포즈를 자세히 보면 사랑에 대한 남녀의 상반된 시각이 오롯이 드러납니다. 남자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이고, 여자는 수동적으로 그 사랑을 받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황금빛으로 표현된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은 사랑의 본질을 잘 표현한다. 사랑의 가치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황금과 같고, 사랑의 순간은 키스의 짜릿함처럼 찬란하고 화려하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사랑의 기억은 영원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두 사람만의 보물이며 가장 화려한 순간이다. 황금빛은 온전한 사랑의 환희를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림에서 왠지 사랑의 위태로움을 담고 있는 듯한 불안한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여성은 낭떠러지 앞에서 그의 키스를 받으며 위태로운 모습으로, 남성은 아슬아슬한 이 광경을 무시하고 싶은 듯 그저 키스를 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황금빛에 매혹당해서 보이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황금빛으로 장식된 무늬도 작가의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지만 남녀의 사랑은 부자연스럽고 대조적이다. 그림에서 사실적이며 섬세하고 매끈하게 그려진 피부와 평평하고 화려한 옷의 장식이 대조를 이룬다. 남성의 옷에 그려진 흑백의 네모와 여성의 옷에 그려진 색색의 동그란 무늬도 대조적이다. 옷에 새겨진 황금빛 소용돌이 무늬도 남녀가 다르다. 여성의 소용돌이는 중심을 향하지만 남성의 것은 밖으로 향한다. 

 

《키스》의 그림 속 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는 클림트와 유일하게 플라토닉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인 '에밀리 플뢰게'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또 다른 별명은 '비엔나의 카사노바'였다. 그는 육체적 관계 속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 얼마나 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졌는지, 1918년 56세에 뇌졸중으로 사망 후 14명이 유산상속때문에 친자확인 소송을 한다. 그리고 그중 4명이 자식으로 판결 났다. 그랬던 그가 죽기 직전에 찾았던 여성이 있었다. 그의 정신적인 사랑이자 지주였던, 에밀리 플뢰게(Emilie Floege)이다.

 

 ‘포르노 화가’라고 불릴 만큼 에로틱한 그림을 그렸던 클림트. 하지만  에밀리를 모델로 그린 그림 4점은 모두 에로틱하지 않다. 이전까지의 유혹하는 느낌과는 다르게 작품 속 여성은 우아하다. 클림트는 그녀를 위해 400여 통의 엽서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에밀리는 그가 꿈꾸는 정신적인 갈증을 채워준 여인이었다. 

 

그런데 클림트이 또 바람기가 발동되어 다른 여자들을 만나기 시작하자 에밀리는 이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클림트를 떠난다. 에밀리가 떠나자 클림트는 한없이 괴로워하고 에밀리를 그리워하며 그린 작품이 《키스》이다. 그리고 클림트는 에밀리를 다시 찾아가서 함께 하자고 했고 에밀리가 이를 받아들여 둘은 클림트이 죽을 때까지 27년간 함께 한다.

클림트가 동생에 이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미디를 오라고 해!!”라고 외쳤다는데, 미디는 에밀레의 애칭이다. 에밀레는 20일 동안 클림트를 극진히 간호했다. 에밀레 역시 클림트 사망 이후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혼자 살았다고 한다. 클림트가 죽고 난 후에도 끝까지 독신으로 살다가 클림트 묘 옆자리에 나란히 누웠다고 한다.

 

클림트는 한 번도 시인한 적 없지만 그의 대표작인 키스 속 여성이 에밀리 플뢰게라는 설이 유력한 이유는 클림트가 재산의 반을 에밀리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키스를 위한 스케치에서 에밀리라는 이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둘의 관계가 정확하게 어땠는지 알 수 있는 확실한 자료가 없어 아직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1908년 이 작품은 쿠스트 타워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에로틱하면서도 황홀한 아름다움에 공개되자마자 미술계가 술렁거렸다. 대중들의 반응도 매우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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