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미술작품

[명화감상] 휘슬러의 '검정색과 금색의 녹턴 : 떨어지는 불꽃' (1875)

想像 2022. 7. 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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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1834-1903)

검은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Nocturne in Black and Gold: The Falling Rocket)

1875, 캔버스에 유채, 60.3×46.7cm, 디트로이트 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s)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3)는 18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녹턴(Nocturne, 야상곡)》이라는 제목의 연작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검은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Nocturne in Black and Gold: The Falling Rocket)》은 런던의 크레몬 가든(Cremorne Gardens)에서 열린 불꽃놀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연작 6점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검은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Nocturne in Black and Gold: The Falling Rocket)》은 1877년에 런던 그로스브너 갤러리(Grosvenor Gallery)에서 처음 전시되었을 때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에게서 혹평을 받았다. 당시 존 러스킨은 영국의 대표적인 비평가였고 그의 비평은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기에 이 비평으로 휘슬러는 타격을 입게 되었다. 결국 휘슬러는 러스킨을 고소하여 결과적으로는 소송에서 승리하기는 하였으나 이후 휘슬러는 파산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추상 미술의 역사에서 시초가 되는 작품으로 평을 받게 되었다.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대중적인 담론을 이끌어낸 러스킨과의 소송에서, 러스킨 측의 증인으로 나온 윌리엄 포웰 프리스는 “그림의 의미에 있어서 구성과 묘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결여하고 있는 휘슬러의 그림은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를 표방하는 유미주의 화가로서의 휘슬러의 정체성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휘슬러는 그림과 화가의 역할에 있어서 구성과 묘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색채와 형태의 체계적인 구성, 배치, 혼합에 더욱 관심을 두었다. 그는 <열 시(Ten O’Clock)>라는 강연에서 “예술은 이기적으로 그 자신의 완벽함만으로 인해 충족된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예술의 역할이 단순히 자연을 모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 예술의 역할을 충족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

 

그의 녹턴 연작 제목을 살펴보면, 묘사 대상이 아니라 녹턴(nocturne, 야상곡)이라는 음악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부터 휘슬러가 의도적으로 관자의 초점을 대상보다는 색과 형태의 배열로 이동시키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쇼팽의 곡 중 여러 작품의 제목이 된 녹턴은 18세기에 주로 저녁 파티 때 연주되던 곡을 일컬으며, 주로 밤에서부터 영감을 받은, 그리고 밤의 성질을 띠는 악곡 장르이다. 그는 이 제목에 대해 “이 제목은 멋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너무나 시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녹턴’이라는 단어는 저녁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라는 점에서 연관되기도 하지만, 음의 요소를 조합하고 구성하는 ‘음악가’처럼 색과 형태를 가지고 ‘편곡’하는 예술가가 되고자 했던 휘슬러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연작의 제목은 이 작품이 필연적으로 색채와 선, 형태의 추상적인 조화, 그리고 음악적인 리듬감을 담고 있을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또한 밤과 도시, 강이라는 대상의 선택은 녹턴 연작을 미술사적으로 구상 회화와 추상 회화의 중간 지점에 위치시키는 데에 일조하였다. 어두운 밤을 그리는 것은 필연적으로 빛을 차단하여 대상의 형태가 잘 보이지 않게 한다. 게다가 색채 선택의 폭을 좁히고, 대상 본연의 색감과 형태를 화가가 자의적으로 묘사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열게 된다. 즉, 화가가 대상에 종속되기보다 오직 그림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한 장식적인 측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검정빛을 주 색상으로 한 《검은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Nocturne in Black and Gold: The Falling Rocket)》의 작품에서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렵고, 수평선이나 사람의 모습이 희미한 환영처럼 남아있어 언뜻 추상회화처럼 보이게 된다. 또한, 강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도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유동적이고 형태가 가변하는 물의 특성과, 강 위로 진 어슴푸레한 안개는 윤곽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대상을 쉽게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

 

아무튼 휘슬러가 녹턴 연작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것, 그것의 결과물, 그리고 이것이 촉발한 논쟁 등 모든 면에서 이 연작이 현대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핵심 아이디어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휘슬러의 녹턴 연작은 다양한 예술적 실험이 벌어지던 19세기 말의 서양 미술사에서 추상회화로 향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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