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경부터 바그너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드라마를 구상했다. 당시 그는 불안정한 망명 생활의 여파로 쇼펜하우어의 염세 철학에 심취해 있었다. 무엇보다 아내 민나와 불화를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의 행복을 갈망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현세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룬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에 탐닉했던 것이리라. 그러던 차에 절묘하게도 후원자의 부인인 마틸데 베젠돈크와 위험한 사랑에 빠졌고, 그 은밀한 열정과 고뇌를 촉매 삼아 자신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완성했던 것이다.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작곡되어 1865년 뮌헨에서 초연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의 가장 중요하고 독창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여기서 외적인 사건보다는 남녀 주인공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고대 그리스 비극을 지향한 심리극을 추구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무한선율을 구체화하고 반음계와 불협화음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독창적인 음악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음악사에 위대한 기념비를 세웠다.
본 공연에서 연주될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은 각각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곡이다. 먼저 제1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전주곡’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현실을 암시한다. 그것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관습의 장벽에 막혀 맺어질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이다. 이 곡에는 전편에서 가장 중요한 라이트모티브가 등장하는데, 첫머리의 ‘동경의 동기’에 이어 ‘사랑의 동기’가 나타나 차츰 고조되어 가지만, 그 정점에서 ‘운명의 동기’에 의해 밀려나 차츰 가라앉는다. 사랑의 완성이 유보된 것이다.
‘사랑의 죽음’은 제3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주검을 앞에 두고 홀로 부르는 노래이다. 이것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피날레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인간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유 의지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밤의 세계를 향해 비상하는 거룩하고 신비로운 의식인 것이다. 그 클라이맥스의 찬란한 화음에서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유보되어온 두 연인의 사랑은 마침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