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베토벤

베토벤 : 교향곡 전곡 (The 9 Symphonies)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想像 2022. 2. 2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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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9 Symphonies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1. Beethoven: Symphony No.1 In C, Op.21 
2. Beethoven: Symphony No.2 In D, Op.36
3. Beethoven: Symphony No.3 In E Flat, Op.55 - "Eroica"
4. Beethoven: Symphony No.4 In B Flat, Op.60 
5.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 "Fate"
6. Beethoven: Symphony No.6 In F, Op.68 - "Pastoral"
7. Beethoven: Symphony No.7 In A, Op.92
8. Beethoven: Symphony No.8 In F, Op.93
9. Beethoven: 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 "Choral" 


1980년대 이후 베토벤 해석에서 나타난 다양한 경향으로 인하여, 이제는 위세도 전만 못하고 때로는 철 지난 유행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30년 동안 카라얀의 베토벤 해석은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1950년대 이후 매 10년마다 교향곡 전곡 녹음만 네 번이나 완성한 것이나 상당한 양의 개별 작품 녹음과 영상물을 남긴 것에서만 연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일생 동안 쌓아 올린 베토벤 연주 경력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12월 4일 베를린에서 제5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지휘하기까지 평생 동안 그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한 것만 해도 720회에 달했다.

 

카라얀의 베토벤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시기와 오케스트라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그의 베토벤은 그 특유의 철저한 장인 정신에 기반을 둔 완벽한 앙상블을 바탕에 깔고 전개되는 매끄러우면서도 화려한 음색의 선율선, 자연스러우면서도 장쾌한 폭발력을 이끌어 내는 다이내믹, 어느 국면에서든 명쾌하게 떠오르는 세부 표정 등을 자연스럽게 펼쳐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서 우리에게 익숙한 카라얀의 베토벤 해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55년 그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종신 지휘자가 된 이후의 일이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하면서 그는 이러한 해석에 두터운 텍스추어와 중량감 넘치는 음향을 역동적으로 결합해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중후함과 정교함, 유연함과 예리함, 화려함과 소박함 등과 같은 상호 대립적인 요소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비율로 섞어내는 베토벤 해석을 보여 주었다.

 

당시 그가 보여 주었던 해석은 같은 해인 12월 27일부터 1962년 11월 9일까지 베를린 근교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완성한 카라얀의 두 번째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  [Beethoven: 9 Symphonies (1963)]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전곡 녹음은 1955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접수하고 6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그가 내 놓았던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여기서 그는 1950년대에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들었던 첫 번째 전곡 녹음에서 그가 보여 주었던 명쾌하면서도 경쾌한 음향 조형에 한층 엄격한 형식 논리와 장쾌한 폭발력을 음향으로 투사해 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녹음은 토스카니니의 영향을 강하게 수용한 것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카라얀이 토스카니니의 음반을 조종실에 갖다 놓고 그의 해석을 참조해 가면서 연주에 임했다는 일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이 녹음에서 푸르트벵글러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것은 아이러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녹음에서 그의 전임자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가 상임 지휘자에 취임할 당시 베를린 필의 대대적인 인원 교체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여기서 카라얀이 보여 준 해석은 그 자신이 노력한 결과로 보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은 푸르트벵글러의 단순한 흉내 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카라얀 자신이 입체적으로 구축해 가는 강직하면서도 예리한 선율선과 치밀하게 계산된 다이내믹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적 긴장과 활력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 결과 60년대의 전곡 녹음은 그가 남긴 네 개의 전곡 녹음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폭발력과 휘발성이 담긴 것이 되었다. 이 녹음 세트 가운데서 제3번, 제4번, 제5번, 제7번, 제9번에서 카라얀이 보여 주는 폭발력은 푸르트벵글러가 1947년 티타니아 궁에서 녹음한 제5번이나 1951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녹음한 전설적인 제9번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 가운데서 기념비적인 해석을 보여 주는 제4번 전 악장, 제5번의 첫째 악장과 마지막 악장, 제7번의 마지막 악장, 제9번의 빠른 악장 등은 카라얀 특유의 빠른 템포와 입체적인 음향 조형 속에서 떠오르는 무자비하다고 해야 할 정도의 강력한 파괴력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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