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Pieces from Romeo & Juliet, Op. 75
Sergei Prokofiev, 1891-1953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음악 분야에 있어서 벨리니(Vincenzo Bellini)와 구노(Charles Gounod)가 오페라로, 차이콥스키(Pyotr Tchaikovsky)나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가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작곡하는 등 음악화 작업이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무용 분야에서만큼 19세기에는 그다지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1938년 프로코피예프가 음악을 작곡한 발레 버전이 초연되면서부터 이 희곡은 전체 내용이 괄목할 만한 음악의 옷을 입고 진지한 발레극으로 활발하게 연출되기 시작했다.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은 1935년부터 이듬해인 36년까지 2년에 걸쳐 작곡되었다. 당시의 수립된 혁명정권이 싫었던 프로코피에프는, 1918년 시베리아와 일본을 경유해 미국으로 망명해 뉴욕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점차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커져 일시적인 귀국을 시도하며 상황을 살피다가 35년에 가족과 함께 귀국한 직후였다. 오랫동안 그려오던 고향에 돌아온 이후 첫 번째 본격적인 대작인 만큼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이 여느 작품보다 한층 온 힘을 기울여 쓰여진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1936년과 1937년 두 차례에 걸쳐 오케스트라 모음곡 1번과 2번이 연주되었고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937년에는 솔로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작곡하여 이 또한 많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음악이 널리 알려지며 사랑받게 된 결과,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루노 국립극장과 레닌그라드 발레 아카데미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레로 상연하자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레닌그라드 쪽에서는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Leonide Lavrovsky)가 안무를 담당하면서 다시금 작곡가와 발레에 대한 의견 차이로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못했고, 결국 1938년 브루노에서 이보 소타가 안무와 주역을 맡은 발레 버전이 초연되었다. 이후 프로코피예프는 라브로프스키와 다시 한 번 악보와 발레 대본을 맞추며 작업을 계속해 나갔고 수정 또한 계속 진행되었다. 결국 라브로프스키의 안무와 피터 윌리엄스의 의상이 완성됨에 따라 1940년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에서 비로소 소비에트 프리미에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볼쇼이에서도 1946년부터 이 발레를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무대제작의 어려움 때문에 현대에는 발레 전막 공연보다는 오케스트라 모음곡과 솔로 피아노 모음곡이 더 자주 연주된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그 자체로도 대단히 훌륭한 걸작인 탓에 관현악이나 솔로로 듣더라도 원작 이상의 감동을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를 번갈아 편곡하는 방식은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프랑스 작곡가인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에 견줄만하다(화성이 이국적이고 테크닉이 화려하다는 점과 두 작곡가 모두 피아노 연주에 능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관현악 모음곡은 플롯의 극적인 진행보다는 각 장면마다의 교향악적 효과에 치중한 느낌이 강하게 들고, 피아노곡은 대체로 발레의 장면을 따라 진행하며 보다 음악적인 완결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건과 시간을 번갈아 진행시키거나 빠르기와 화음, 음색을 상이하게 배치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독립적으로 출판 번호까지 붙인 피아노곡은 라벨 같은 신고전주의 피아니즘 성격과 리스트(Franz Liszt)로부터 내려온 비르투오소 전통을 결합한 20세기 피아노 음악의 걸작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1. National Dance
2. The Street Wakens (Scena)
3. The Arrival of the Guests, minuet
4. Juliet as a Young Girl
5. Masks
6. Montagues and Capulets
7. Friar Lawrence
8. Mercutio
9. Dance of the Girls with the Ladies
10. Romeo and Juliet Before Par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