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Concerto No.1 in D minor, Op.15
Johannes Brahms, 1833∼1897
브람스의 관현악 창작 이력에서 시작과 끝을 장식한 것은 공히 협주곡이었다. 그의 첫 관현악곡은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며, 마지막 관현악곡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 두 곡은 애초에는 협주곡이 아닌 교향곡으로 구상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원숙기의 소산인 [2중 협주곡]과는 달리, 청년 시절의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상당한 산고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었다.
브람스가 첫 협주곡의 완성에 이토록 오랜 시간을 소요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애초에 그의 포부가 지나치게 컸던 탓을 들 수 있다. 물론 슈만의 부담스런 격려와 베토벤에 대한 경외심이 그를 필요 이상으로 압박하고 고무시켰던 측면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현악 장르에 대한 첫 도전에서 교향곡을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리 브람스라고 하더라도 무모한 일이었다. 결국 그는 구상을 축소·변경하는 타협안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 일을 계기로 첫 교향곡에는 더욱 더 신중하게 접근하게 된다.
다만 그런 시행착오가 그저 공염불은 아니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d단조](제1악장)과 [피아노 협주곡 제3번 c단조](제3악장), 그리고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이 곡은 브람스 특유의 ‘교향악적 협주곡’의 시발점이 되었다. 피아노 파트는 고도의 정력과 기교를 요하지만 관현악을 압도하기보다는 그와 대등한 관계로 맺어져 있고, 전곡은 유기적이면서도 명쾌한 구성으로 고전파적인 형식감을 견지하고 있다. 비록 관현악 처리에 있어서 미숙한 면이 없지 않고, 전체적으로 의욕과잉인 면도 엿보이지만, 이 곡은 패기만만했던 청년 브람스의 초상을 전하는 가장 뜨겁고 생생한 증언이라 하겠다.
한편 이 협주곡은 1859년 1월 22일, 하노버 궁정극장에서 브람스 자신의 피아노와 요아힘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클라라의 일기는 이 때 브람스의 연주가 아주 훌륭했고, 청중들도 호의적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닷새 후에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진행된 공연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브람스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오히려 하노버에서보다 더 훌륭했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한 결과에 충격을 받은 브람스는 “다음 협주곡은 완전히 다른 울림의 것이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먼 훗날의 일이었다.
Alfred Brendel · Berliner Philharmoniker · Claudio Abbado
(전악장 연속 감상)
제1악장: Maestoso
이 장엄하고 거대한 첫 악장은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총주로 출발한다. 이 개시부는 초자연적인 울림과 오르간 포인트(지속저음)의 부각이라는 면에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의 첫 악장을 떠올리게 한다. 계속해서 바로크 협주곡의 리토르넬로를 연상시키는 긴 서주가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이 악장의 제1주제를 중심으로 투쟁적 분위기와 숙명적 이미지가 부각된다.
서주의 격렬한 요동이 조금씩 가라앉으면 이내 주부로 넘어가 피아노가 등장한다. 제시부에서는 역시 투쟁적인 국면으로 나아가는 제1주제와 지극히 차분하고 서정적인 제2주제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데, 특히 풍부한 표정을 띠고 서서히 부풀어 올라 무한한 동경을 자아내는 제2주제부의 감흥은 각별하다. 피아노의 강렬한 타건과 함께 시작되는 발전부에서는 피아노와 관현악이 마치 전투라도 벌이듯 격렬하게 맞부딪히다가 폭발적인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재현부 이후에 음악은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 오른 다음 격정적인 울림 속에서 막을 내린다.
제2악장: Adagio
명상적인 기운과 종교적인 기품으로 가득한 이 느린 악장은 작곡 당시 아직 20대 초반이었던 브람스가 얼마나 속 깊고 다정다감한 청년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피아노와 관현악이 응답풍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3부 형식의 곡으로, 주요주제는 첫머리에서 바순이 제시하며 피아노의 정교한 서법이 두드러진다.
어떤 이는 이 악장을 들으면서 브람스가 언급했던 ‘클라라의 초상’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슈만을 기리는 진혼곡의 이미지를 거론하기도 한다. 다분히 침착하고 사색적인 흐름 속에 깊은 슬픔과 애틋한 그리움이 담겨 있으며, 사뭇 감동적인 클라이맥스에서는 그 모든 상념과 감정들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려는 듯한 열의가 느껴진다.
제3악장: Rondo. Allegro non troppo
피날레는 경쾌하고 활력 넘치는 론도 악장이다. 다시금 펼쳐지는 투쟁을 통해서 이제까지의 역경과 고뇌를 떨치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이 악장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론도 주제는 다성적인 요소와 당김음을 지니고 있어 바흐의 협주곡을 연상시키며, 두 번째 부 주제는 카논풍으로 등장하여 역시 바로크적인 기법을 가리키고 있다. 아울러 중간의 단조 부분에서 푸가토를 도입하여 긴장감을 높이는 수법은 베토벤의 협주곡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단계에서 음악은 ‘환상곡풍으로’라고 지시된 짧은 카덴차를 거친 후 짐짓 멋을 부린 듯한 코다로 넘어가 잠시 느긋한 흐름을 보이다가 밝은 D장조로 힘차게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