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Piano Sonata No.21 In B Flat Major, D.960
슈베르트는 진심으로 베토벤을 존경했다. 이것은 단순한 모방자 혹은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한 위대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스스로 이해하고 동일시하는 것이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1828년은 베토벤이 죽음을 맞이한 바로 그 다음 해로서 그의 마지막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완성한 해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B플랫 소나타]를 ‘피아노 소나타 3번’이라고 불렀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에 비해 작품 수가 적었던 슈베르트는 세 개의 소나타만(세 개의 후기 소나타인 [C단조 D.958], [A장조 D.959], 그리고 마지막으로 [B플랫 장조인 D.960]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이들 작품이 그의 피아노 작품과 인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세 개의 걸작으로 알고 있지 그의 피아노 작품들의 초기작 혹은 단순한 대표작으로 알고 있지는 않다.
슈베르트의 후기 소나타는 특히 테크닉적으로 대단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조에 대한 지적인 통찰력과 작곡가의 의도를 꿰뚫는 직관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그 음향에 있어서의 감각적인 접근 방식, 음색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의 창의성과 다채로운 레가토 효과를 만들기 위한 기술, 이전 시대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었던 변화무쌍한 톤의 범위를 모두 소화해내야 한다. 이 가운데 특히 D.960의 네 악장은 슈베르트의 필생의 동반자라고 말할 수 있는 방랑자의 드라마가 가장 짙게 깔려 있는 작품으로서 가히 슈베르트의 마지막 여행기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을 완성하고 두 달이 지난 뒤 슈베르트는 삶의 여행을 마치고 죽음으로의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1악장 Molto moderato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의 1악장 Molto moderato의 시작부는 그 어떤 감성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온화하지만 절실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생의 마지막에 직면한 이 소나타에 등장하는 여행자가 느끼는 생명에 대한 근엄함과 삶에 대한 초연함 모두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 멜로디는 그가 생의 마지막 해에 작곡한 리트인 ‘Am Meer’와 닮아 있는데, “일몰의 마지막 햇빛 아래로 저 멀리 바다가 희미하게 번져드네”라는 가사의 이미지와도 상통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다만 조금 더 정확하게 한정 짓자면 리트에서는 석양의 아름다움이 향수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소나타에서도 오히려 불안감과 번민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악장의 전개부에서 주제 선율과 리트 ‘Der Wanderer’를 연상케 하는 멜로디의 화성이 서로 발전적으로 수반되며 변형을 이루는 모습 또한 감동적이다. 초반부는 이렇게 리트의 주제선율로부터의 차용들이 주를 이루다가 악장의 중간 부분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한 남자의 감정적 폭발을 상징하는 듯한 다이내믹한 클라이맥스가 터져 나온다. 한 차례 커다란 폭풍이 휩쓸고 간 이후 몇 차례 더 감정의 분출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내 다시 자신의 길을 찾은 듯 도입부에서와 같은 조용하면서도 체념의 발걸음을 다시금 재촉한다.
2악장 Andante sostenuto
두 번째 악장인 Andante sostenuto는 슈베르트가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작품들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곤 한다. C샤프 단조에서 B 플랫 장조를 거쳐 다시금 회귀하는 구성으로서, 탄식조의 무거운 발걸음을 은유하는 주제 선율의 아름다움에는 고통을 넘어선 한 인간의 공허함과 진지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A장조의 중간 부분은 일종의 일시적인 심리적 위안으로서 리트 ‘Der Lindenbaum’의 다음 대목을 연상케 한다. “그 가지들이 속삭이듯이 나를 부르는 것 같네. 이리로 오게, 친구여, 여기서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일세...” 다시 한 번 화자의 탄식의 멜로디는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단조에서 장조로 옮겨가면서 기약 없는 행복을 꿈꾸며 이 악장은 끝을 맺는다.
3악장 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
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인 3악장 스케르초는 한결 현실성이 적고 그 무게감 또한 훨씬 낮다. 전 악장에서의 여운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만큼 이 스케르초 악장의 밝고 가벼운 리듬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자조적인 느낌을 주는 효과 또한 탁월하다. 더 나아가 낮은 음역대로만 일관하는 트리오 B플랫 단조 부분이 화자의 여전히 어두운 심정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 스케르초는 일종의 양분된 심리상태를 상징한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마지막 피날레인 는 3악장의 해석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큰 대목이다. 연주자의 관점에 따라 이 악장에서 더 큰 감정의 낙폭과 산화된 열정을, 혹은 보다 온화한 자연주의적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C단조의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듯한 짧은 도입부와 이에 대한 화답으로서 긍정으로 가득 찬 B플랫 장조의 주제 선율이 만들어내는 댓구는 마치 베토벤의 [현악 4중주 OP.130]의 마지막 악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음악은 점점 격정적으로 발전되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매번 긍정의 힘에 의해 가로막히며 일종의 춤곡의 분위기로까지 변형된다. 점점 느려지며 론도적인 성격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의미심장한 게네랄파우제를 거친 뒤 짧고 장대한 크레센도를 통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슈베르트가 남긴 마지막 이별 인사로서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마지막 ‘거리의 악사’에 비견할 만한 비통한 절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 소나타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방랑자가 겪어온 험난한 삶에 대한 마지막 경의로서의 보상은 충분히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