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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기타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케 [Glenn Gould · Vladimir Golschmann · Toronto Symphony Orchestra]

by 想像 202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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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leske in D Minor, TrV 145

Richard Georg Strauss, 1864 ~1949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짧지만 강력한 광기, 여기에 화려한 피아노의 활약과 슈트라우스 특유의 빛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한 편의 짧은 소극처럼 펼쳐지는 이 작품은 1885년부터 86년에 이르는 겨울에 작곡한 것이다. 당시 21세의 젊은 작곡가는 자신의 멘토이자 평생의 롤 모델이었던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low)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위대한 지휘자는 마이닝겐 궁정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며 악단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는데 젊은 슈트라우스를 만난 뒤 그의 천부적인 재능에 감탄한 나머지 브람스 이후 최고의 작곡가로 성장할 수 있음을 간파했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지휘 경험이 별로 없었던 슈트라우스를 1885년 10월에 자신의 부지휘자로 임명했고 그해 12월에는 마이닝겐의 자리를 완전히 그에게 넘겨주었다.

 

원래의 제목은 [스케르초(Scherzo) D단조]로서 온전히 폰 뷜로를 위해 작곡한 만큼 작곡가로서는 젊은 날의 초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중요하고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그러나 폰 뷜로는 이 작품에 대해 “넌센스로 점철된 복잡한 작품”이라고 언급하면서 “피아노 파트는 리스트적이지만 연주가 불가능하다”며 연주하기를 거부했다.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에게 너무나 커다란 손을 요구하는 만큼 간신히 한 옥타브를 짚을 수 있을 정도로 손이 작았던 폰 뷜로로서는 정말로 연주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슈트라우스는 언급한 바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자신의 지휘와 피아노 연주(자신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로 리허설을 하며 폰 뷜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와 1급 지휘자(둘 다 자신임을 밝히지는 않았다!)가 처음 리허설을 한 결과 모든 것이 질이 떨어지는 넌센스인 것 같았습니다. 끝까지 들어보니 완전히 낙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리허설만 하고 초연은 하지 못한 채 몇 년이 지난 뒤인 1889년 리스트의 제자인 오이겐 달베르트(Eugen d’Albert)를 알게 된 슈트라우스는 몇몇 부분을 삭제하고 피아노 파트를 바꾸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개정된 작품은 [부를레스케]라는 제목으로 탈바꿈하여 달베르트의 연주로 1890년 6월 21일 그의 [죽음과 변용]과 함께 초연되었고, 당연히 달베르트에게 헌정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대신 헌정 받은 폰 뷜로에게 있어서 자신에게도 그와 동일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도 아직 대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젊은 작곡가였던 차이코프스키나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폰 뷜로는 여전히 이 작품을 탐탁지 않아 해 브람스에게 “천재적인 부분은 있지만 몇몇 부분은 끔찍하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이가 나중에 차이콥스키와 화해했던 것처럼, 폰 뷜로도 1891년 1월 오이겐 달베르트와 함께 베를린에서 이 작품을 연주하여 화해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1894년에는 출판으로도 이어졌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R. 슈트라우스, 부를레스케 [R. Strauss, Burleske for Piano And Orchestra] (클래식 명곡 명연주, 박제성)

 

Glenn Gould · Vladimir Golschmann  · Toronto Symphony Orchestra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 Strauss: Burleske in D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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