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셔 디스카우. 지난 92년 공식적인 은퇴 공연을 가졌던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의 공로와 업적은 오페라, 바흐, 현대곡 초연, 그리고 음악저술의 영역에서도 빛나고 있지만 그가 20세 최고의 리트 가수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베를린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나치와 히틀러의 치하와 전쟁의 와중에서 보냈다. 이미 전쟁이 진행 중이던 41년, 게오르크 발터에게 성악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이듬해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서 헤르만 바이센보른을 사사했다. 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3년, 불과 18세이던 그는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성악가의 꿈을 접어두고 총을 잡은 그는 다행히 죽음으로 내몰리지는 않았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미군의 포로로 잡힌 그는 수용소 음악회로 첫 공연을 기록했다.
47년에 다시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 복교해 바이센보른의 문하로 들어갔다. 22세의 나이로 다시 시작하는 '늙은 학생'이었으나, 극한의 상황을 겪고 많은 생각을 한 4년의 공백기가 그에게는 오히려 훗날 예술적 완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재능만은 남달랐던 그는 같은 해 프라이부르크에서 요하네스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 Ein deutsches Requiem〉으로 데뷔했고, 다음해에 베를린 시립 오페라 극장에서 주세페 베르디의 〈돈 카를로스 Don Carlos〉에서 포사 역으로 오페라에 첫발을 들여놓았으며 수석 바리톤 가수가 되었다.
이후 60년대 중반까지는 작곡가의 국적, 시대를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오페라에 출연하며 한계를 모르는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주요 오페라 극장과 음악제에서 공연했는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알마비바 역과 돈 조반니부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Salome〉에서 세례 요한 역에 이르는 고전과 현대의 폭넓은 배역을 맡아 소화해냈다. 바그너 악극 〈로엔그린 Lohengrin〉에서 헤랄트 역,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바그너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전야극)에서 보탄 역, 〈탄호이저 Tannhäuser〉에서 볼프강 역을 맡아 공연했다.
1951년, 26세 때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빈 필과 말러의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협연했다. 당시 녹음은 음반화되어 역사적인 명반(EMI)으로 남았다. 이미 독일의 전후세대 최고의 음악가로서의 자리를 굳혔던 것이다.
1952년 프란츠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Die schöne Müllerin〉·〈겨울 나그네 Winterreise〉를 연주해서 연주회 형식에 의한 공연으로 유명해졌다. 미국에서는 1955년 처음으로 신시내티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와 요하네스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을 연주했다.
1962년 영국 워릭셔 주 코벤트리 시에서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진혼곡 A War Requiem〉을 훌륭하게 초연하고 1965년 서퍽 주 올드버그에서 브리튼이 그를 위해 작곡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노래와 격언 Songs and Proverbs of William Blake〉을 소개했다. 그는 독일 최고의 가곡 가수였고 방대한 연주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친 전성기에 그의 활동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1970년대부터는 지휘도 했고 슈베르트와 바그너에 대한 책을 썼으며, 독일 가곡집 1권을 편찬했다. 67년에 그동안 호흡을 맞춰오던 제랄드 무어의 은퇴공연에 참여했고, 71년에 이스라엘 순회 공연을 가졌다. 이는 전후 최초로 이스라엘에서 공연한 독일인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동안 세계주요 가극장을 거의 모두 섭렵했다. 77년에 16년 차이가 나는 루마니아 태생의 소프라노 율리아 바라디를 세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80년대 들어 그는 20세기 작곡가들의 작품 초연에 집중했다. 그가 초연한 작품 수는 일일이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 중의 상당수는 그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곡들이었다. 92년 가수로서 은퇴했지만 93년부터 지휘자로서 여러 페스티벌에서 지휘했고, 마스터 클래스도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피셔 디스카우의 음반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다. 그는 일곱 번의 공식 레코딩을 통해 음반을 남겼다. 그중 62년 제랄드 무어와의 연주(DG)가 가장 완성도 높은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