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Sonata No. 14 in C-Sharp Minor, Op. 27 No. 2 "Moonlight"
Ludwig van Beethoven
20세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해석의 전형은 흔히 빌헬름 박하우스와 빌헬름 켐프의 양대 산맥으로 이야기된다. 이를테면 이들의 연주와 해석이 독일 음악의 가장 전통적이고도 순수한 계승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19세기 말엽에 출생했고 20세기 초엽부터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여 독일 음악의 합리적 전통을 되새기는 작업을 이행했다.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1895-1991)는 유타포크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포츠담 궁정악단의 악장이었고 형도 후일 교회음악가로 성장하는 음악가정에서 1895년 11월 25일에 태어났다. 천재들이 거의 그러하듯 켐프 역시 어린 시절 수많은 일화를 만들었다. 그 중의 하나. 9세 때 베를린 음악학교의 시험을 볼 때 바하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암보로 이조(移調)하여 연주해서 교수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일이 있었다. 이 학교를 졸업한 뒤엔 베를린 음악대학으로 다시 진학하여 피아노, 오르간, 음악학을 연마했다. 물론 재학 중에도 이미 직업적인 아티스트로 착실히 명성을 쌓아 올려갔다.
1917년(22세)에 최고의 영예인 '멘델스존 상'을 받고 졸업했고 본격적인 연주활동에 나섰다. 졸업 이듬해에 베를린·필의 독주자로 계약을 맺었고, 1920년에 대망의 첫 레코딩을 했다. 1924년, 스투트가르트에 있는 베르텐베르크 국립 음악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고, 한편으론 연주와 레코딩에도 열심이었지만 끝내 1929년엔 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가르치는 일과 연주활동을 양립시킬 수 없을 만큼 그는 분방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 포츠담 음악연구소의 마스터 클라스를 이끌면서 연주활동을 펼쳤고 1931년엔 독일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됐다. 제 2차 대전후 잠시 작곡에 전념하다가 다시 연주 일선에 나섰고 베토벤 소나타 전곡의 연속 연주와 전집 레코딩의 위업을 달성하여 세계최고의 베토벤 아티스트라는 명예를 안았다.
켐프의 레퍼토리는 물론 베토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의 연주곡목은 바하에서 브람스에 이르는 폭넓은 것이고 그들 작품 속에서 성실하고도 낭만적인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그의 중심된 음악세계는 베토벤이었다.
Beethoven : Piano Sonata No. 14 in C sharp minor, Op.27-2 "Moonlight"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 Op.27-2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전부 32곡이나 되는데, 그는 생애를 통해 초기의 작품에서 만년의 작 품에 이르기까지 그때 그때의 피아노의 기능에 순응하여 최대한의 가능성을 보였다. 이 작품들은 그의 음악 생애를 세로로 잘라서 보았을 때 양식 적인 변화의 축도이기도 하다.
그의 소나타들이 오늘날까지도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 뿐 아니라 전문가들에 의해서도 많이 연주되는 것을 보면 그의 피아노 음악들의 중요성은 설명 안해도 될 듯 싶다. 이러한 그의 피아노 소나타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제 14번은 흔히 ≪월광≫이라고 불려지는데, 이 곡만큼 많은 사연을 간직한 곡도 드물다. 베토벤이 눈 먼 처녀를 위해 달빛에 잠긴 채로 만들었다던가, 빈 교외에 있는 어떤 귀족의 저택에서 달빛에 감동되어 만들었다던가, 또는 연인에 대한 이별의 편지로 작곡한 곡이라든가 하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베토벤 본인은 단지 '환상곡 풍의 소나타'라고 불렀을 뿐, ≪월광≫이란 이름은 비평가 렐슈타프가 이 작품의 제1악장이 스위스의 루체른 호반에 달빛이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 같다고 비유 한데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특징은 제1악장이 자유로운 환상곡풍이고, 제3악장에서는 소나타 형식이라는 특이한 방식을 썼다는 점이다. 세도막 형식에 2/2박자, 환상적이며 단순한 제1악장은 아름다운 가락이 낭만성과 정열의 빛을 더하고 있다.
고요한 호수 위에 창백한 달빛이 반짝이는 것처럼 말이다. 스케르초 풍의 3/4박자 곡인 제2악장은 전원의 무곡으로서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맛이 감돈다. 정 열과 원숙한 구성의 제3악장에서는 무겁게 떠도는 암흑 속에서 섬광을 일으키는 천둥과 번개처럼 격한 분위기가 힘차게 전개되어 당시 베토벤이 지니고 있던 청춘의 괴로움과 정열을 연상시킬 수 도 있다. 1801년에 완성이 된 이 곡은 줄리에타 귀차르디라는 아름다운 여성에게 바쳐졌다.
그녀는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운 제자였는데, 두사람 사이에는 여러 가지 염문이 전해지고 있다. 아직까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베토벤의 '영원한 여인'의 정체가 이 여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줄리에타는 이 곡이 완성될 때쯤 젊은 멋쟁이 백작과 결혼했다. 돈도 없고 신분도 낮고 더욱이 귀까지 나쁜 음악가와는 결국 헤어지고야 만 것이다. 줄리에타가 이런 명곡을 바칠 만한 가치가 없는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베토벤은 크게 실망했고 마침내 그 유명한 '하일 리겐시타트 유서'를 쓰게 된다.
1. Adagio Sostenuto
독일의 시인이자 음악평론가 루드비히 렐슈타프가 베토벤 사후 5년 뒤인 1832년에 이 1악장에 대해 “달빛이 비친 루체른 호수 위에 떠 있는 조각배”라는 문학적인 비유를 한 것이 이 작품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어둡고 부드러운 분위기 사이로 일말의 슬픔 혹은 비탄이 언뜻 언뜻 내비치는 이 악장은 베를리오즈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묘사할 길이 없는 한 편의 시”라고 표현한 바 있을 정도로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 아다지오 악장에서 베토벤은 “피아노의 페달을 반드시 써서 극도의 섬세함을 표현해야 한다(Si deve suonare tutto questo pezzo delicatissimamente e senza sordino, One must play this whole piece very delicately and without dampers.)”고 지시했다. 여기서 sensa sordino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댐퍼 없이"가 맞는데 이는 베이스 라인의 효과를 중요시했다는 작곡가의 의도에 의거하여 현대에 와서는 "반드시 페달을 사용해서"로 통용된다. 베토벤 시대의 댐퍼(약음기)란 현대의 현과 햄머 사이에 펠트를 껴서 소리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주는 무릎레버(현대의 소프트 페달이나 일부 우나 코르다 페달의 효과에 해당)를 뜻하는데, 이를 사용하면 지속음과 배음이 모두 끊겨버리기 때문에 베토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베토벤의 의도대로 서스테인 페달을 악장 내내 밟고 있으면 현대 피아노는 음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불협화음이 생기므로, 연주자나 판본에 따라 반페달 테크닉을 사용하거나 페달을 일정 길이로 끊어서 사용한다.
이 악장의 가장 큰 특징은 시종일관 일정한 리듬이 되풀이되는데, 이것은 베토벤이 도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대목에서 흔히 사용하는 패턴으로서 화성 또한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전조로 급작스러운 색채변화를 꾀하고 있어 마치 정지되어 있는 지점에 미묘한 격렬함을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그런 까닭에 잔잔한 호숫가에 달이 비친 느낌과 그 표현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효과를 충분히 자아낸다. 이 [월광 소나타] 이전에는 이토록 묘사적인 동시에 상징적이며 시적인 느낌이 강렬한 음악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 이후로는 후배 작곡가들의 수많은 표제음악과 건반음악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장 높은 경지의 모델이 되었다.
2. Allegretto
리스트가 “두 개의 심연 사이에 높인 한떨기 꽃”과 같다고 표현한 이 매혹적인 2악장은 트리오 형식의 스케르초로서 특히 스포르찬도의 효과가 인상적이다.
3. Presto agitato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맹렬한 피날레 악장으로서 오른손의 날카로운 아르페지오와 공격적인 옥타브 스타카토의 연타가 쉼 없이 펼쳐진다. 이 악장에서도 스포르찬도가 빈번히 사용되어 빠른 템포에서도 다채로운 음향효과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전례 없는 크레센도로 낭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의 응축과 폭발을 표현한다. 이러한 스타일이 강하고 들끓는 듯한 아르페지오와 스타카토로 점철된 피아노 소나타는 이후 [열정 소나타 Op.57]의 1악장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