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Sonata No. 28 in A Major, Op. 101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베토벤이 풍부한 상상력과 뛰어난 스토리-텔링 테크닉을 발휘한 독특한 작품인 피아노 소나타 28번은 1816년에 완성하여 베토벤의 제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도로테아 에르트만 남작부인(Dorothea Ertmann)에게 헌정되었다. 이 28번 소나타를 헌정 받은 에르트만 남작부인은 베토벤 음악의 신비로운 뉘앙스를 감지하는 능력에 있어서 그녀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을 받았고, 사람들을 별로 칭찬하지 않았던 베토벤의 조수 안톤 신틀러조차 그녀를 빈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로 칭송했을 정도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 바 있다. “베토벤의 작품 가운데 가장 미묘한 의도마저 그것이 자신의 눈앞에서 씌어진 듯한 확신을 갖고 그녀는 밝혀나갔다. 다시 말하자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속도가 주는 수없이 많은 뉘앙스를 정확하게 파악해 낸 것이다. 프레이즈 하나 하나의 정신적인 내용에 적절한 움직임을 주어 모든 것에 동기유발이 되듯이, 그녀는 프레이즈와 프레이즈를 예술적으로 매개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체르니 또한 그녀의 연주에 대해 “육체적인 힘도 대단하지만 베토벤의 작품에 내포된 정신에 의거하여 연주했다”고 메모를 남겼다. 아마도 이 소나타만의 특별한 환상곡적 분위기는 아마도 베토벤이 에르트만 남작부인의 음악적 재능을 염두에 두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도 있다.
다섯 곡으로 이루어진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의 첫 곡으로서 이 작품은 낭만적인 아름다움,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과 대범한 변용, 대위법적인 작곡 기법이 한 데 어우러지며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각 악장들의 지시는 앞선 27번 소나타처럼 이탈리아가 아니라 순수 독일어로 적혀 있어 시적인 분위기와 극적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관념적인 독일어 지시와 낭만적인 주인공을 관찰하는 듯한 전개 방식은 후일 슈만의 피아노 작품들을 예견하는 듯하다. 그러한 까닭에 이 작품은 19세기 낭만주의의 신호탄으로도 일컬어지는데,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이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의 음악어법인 무한선율(Leitmotive)에 대한 개념을 잉태시켰다고 토로했고,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는 멘델스존의 ‘무언가’를 연상시킨다고 언급한 바 있다.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피아노 소나타는 형식적인 측면보다는 내적인 흐름의 측면에 있어서 강한 완결성을 자랑한다. 감상-행진-동경-승리로 상징할 수 있는 서사구조로 연결된 만큼 한 편의 짧은 낭만주의 시대의 서정시를 연상시키고, 어떻게 보면 슈베르트 연가곡들의 감성적 모델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 전체의 구조 또한 특이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 아니라 사실상 서정적인 주제가 단선율적으로 변형, 발전해나가는 형식이고 2악장은 캐논 형식의 트리오로서 4악장의 푸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3악장을 경과부로 이해한다면 2악장부터 4악장까지는 바로크 시대의 프렐류드와 푸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히 성격적인 표현에 있어서 이 작품에는 칸타빌레와 대위법의 조화라는 형식의 새로운 대비가 강조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서 모노포닉(monophonic)한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폴리포닉(polyphonic)한 에너지감과 구축력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후기 베토벤만의 숭고한 초월정신을 드러내는 데 대단히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 끊임없는 내적인 진동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외적인 견고함을 조화시켜 음악의 새로운 이상향을 설계했다는 측면에 있어서 이 28번 소나타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베토벤은 당시 독일에서 개발된 신형 피아노(독일어로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라고 불렸던 초기 피아노를 지칭)를 사용하여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피아노 음향을 이 작품을 통해 실험할 수 있었고, 그 새로운 피아노에 대한 가능성과 이에 따른 음악의 폭발적인 팽창 및 이질적인 요소들의 융합이 어우러진 새로운 음악적 목표는 뒤이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에서 온전히 드러났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들 가운데 대중들 앞에서 연주된 것(1816년)을 작곡가가 직접 관람했던 거의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고, 작곡된 다음 해인 1817년 빈의 슈타이너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었다.
1. Etwas lebhaft und mit der innigsten Empfindung (Allegretto ma non troppo)
“다소 활발하게, 극히 내성적인 감정을 곁들여.”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항하여 오스트리아에 대한 애국심이 고취되었던 베토벤은 27번 소나타에 이어 이 소나타에서도 독일어로 악장별 템포 표기를 했다. 특히 이 악장의 자유로운 형식과 서정적인 내용, 대범한 도약과 풍부한 어조, 사랑스러운 표정 등등은 후일 슈만의 피아노 작품들을 연상케 한다.
2. Lebhaft, marschmäßig (Vivace alla marcia)
“활발하게, 행진곡 풍으로.” 교향곡 7번의 스케르초 악장과 같은 저음역의 붓점 베이스라인과 다이내믹이 돋보이는 동시에 이와 정반대되는 트리오 부분에서는 엄격한 2성 캐논이 등장하며 슈만풍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듯한 풍부한 화성과 장대한 울림이 단연 돋보인다.
3. Langsam und sehnsuchtsvoll (Adagio ma non troppo, con affetto)
“천천히 그리고 동경에 찬 표정으로.” 짧지만 대단히 낭만적인 감성이 짙게 배어있는 이 아다지오 악장은 앞선 ‘그리워함(sehnsuchtsvoll)’과 종결부 및 다음 악장의 준비 부분으로서 도약을 준비하는 ‘결심(Entschlossenheit)’이 서로 화답을 하는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선율이나 화음을 보면 32번 소나타 아리에타 악장의 에피소드들과 마지막 코다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4. Geschwind, doch nicht zu sehr und mit Entschlossenheit (Allegro)
“빠르게,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또한 결연하게.” 3악장 뒤에 등장하는 짧은 경과구로 이어지는 이 피날레 악장은 폴리포닉한 요소가 일관되게 등장하는 다이내믹한 악장으로서 개시부에 4성부 푸가토가 등장하여 단호함을 고조시킨다. 네 개의 상승하는 16분 음표로 구성된 주요 동기는 상승, 혹은 하강 형태로 악장 곳곳에서 등장하여 전체의 분위기를 직선적이고 적극적이며 웅장하게 이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