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yescas "Los majos enamorados", Cuaderno II: Quejas o la maja y el ruiseñor
Enrique Granados, 1867 ~ 1916
엔리크 그라나도스(1867~1916)는 음악 못지않게 문학과 그림에 소질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대표작은 1912년에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Goyescas)〉이다. 이 일련의 작품은 그가 1911년까지 화가 고야의 그림를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제4번, ‘탄식 또는 마야와 나이팅게일(Quejas o la maya y el Ruisenor)’이며, 이 곡은 가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작곡가는 이 곡에서 놀랄 만한 감성으로 여인의 어리석음과, 새가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지저귀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 작품이 파리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라나도스는 이 작품을 오페라식으로 작곡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으며(이를 계기로 위에서 언급한 리트가 탄생한 것이다), 1916년에는 뉴욕에서의 초연도 성사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라나도스 부부에게 불행이 닥친다. 이들 부부는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스페인으로의 귀국을 미루게 되고, 이 때문에 본래 예정했던 스페인 배가 아닌 영국 배를 탔는데,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격침당한다. 그라나도스는 곧 구조선에 의해 구출되었지만, 아내를 구하려고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두 부부는 결국 영국해협에서 익사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알베니스·그라나도스·파야 - 스페인 (서양음악사 100장면, 2002. 7. 20., 가람기획)
엔리케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 1867 ~ 1916)
그라나도스는 1867년 7월 27일 바르셀로나 근처의 레리다에서 태어났다. 육군 대령의 아들로서 어린 시절부터 호안 밥티스타 푸욜(Joan Baptista Pujol, 1835~1898)을 사사했고 화성과 작곡을 전설적인 펠리페 페드렐(Felipe Pedrell, 1841~1922)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젊은 그라나도스는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위해 스페인을 떠나 1887년 파리로 가서 샤를르 드 베리오(Charles de Beriot, 1833~1914)를 사사했고, 1889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그의 첫 번째 야심작인 [스페인 무곡집 Danzas espanalas]을 출판했다.
그와 함께 했던 음악가들로 스페인 작곡가로 이사크 알베니스와 마뉴엘 데 파야,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를 꼽을 수 있고, 유럽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와 외젠느 이자이, 피아니스트로 미에치슬라프 호르초프스키, 그리고 그를 후원한 작곡가로 카미유 생상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리사이틀에서 그라나도스의 음악을 꾸준하게 연주했던 사람들로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데 일조했던 친구들이었다. 이후 그라나도스는 1901년 아카데미아 그라나도스(Academia Granados)를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했는데, 이 가운데에는 후일 스페인 음악계를 이끌어간 파뀌타 마드리게라(Paquita Madriguera), 쿤키타 바디아(Conchita Badia), 프랑크 마샬(Frank Marshall) 등이 포함된다.
1912년 그라나도스는 미국 피아니스트인 어네스트 쉴링(Ernest Schelling)을 만났다. 쉴링은 스페인 밖에서 그라나도스의 음악을 알린 첫 번째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는 피아노 모음곡인 [고예스카스 Goyescas]를 뉴욕에서 출판하도록 도움을 주었고, 작곡가로 하여금 이 모음곡을 오페라로 만들도록 격려했다. 결국 오페라는 1916년 1월 28일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초연되었다. 그라나도스는 이 자리에 참석하여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던 중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영불 해협에서 그라나도스가 탄 서섹스호가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격침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