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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Yeoleum Son)| 클래식 음악계의 신데렐라 피아니스트
클래식 음악계의 신데렐라, 피아니스트 손열음. 고향 원주여중을 졸업하던 해 대학과정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영재로 수석입학, 차이코프스키 청소년콩쿠르(1997년) 최연소 2위, 비오티콩쿠르(2002년) 최연소 우승,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서울 대전에서의 공연을 거쳐 도쿄(NHK홀)에서 협연하며 국제무대에 데뷔. 열아홉 살 그녀의 이름 앞에는 이미 많은 수식어가 붙어있다. 그래서인지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이 그녀를 채우고 있다.
그녀가 처음으로 피아노를 만난 것이 만 3세. 그 이후로 한번도 피아노와 자신을 따로 두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피아노는 그녀에게 일상이 돼버렸다.
“아직 돌이 되기 전 생후 7~8개월 정도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결혼식에 간 적이 있으셨어요. 그때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을 듣고 어머니께 슬프다는 얘길 했나 봐요. 알아보니 정말 슬픈 배경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피아노와 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 것 같아요.”
지난 1월 28일에는 금호문화재단이 장래가 촉망되는 25세 이하 연주자에게 주는 금호음악인상을 타 또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클래식 음악계의 ‘신동’이니 ‘영재’니 하는 찬사를 넘어 이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라는 이름만으로 청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제 1회 금호음악인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제게 있어 대단한 영광이죠.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음악인으로서 저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아요. 또 한편 기뻤던 건 그 상을 통해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선생님이 금호음악스승상을 수상하신 거예요. 음악인으로서 걸어야 할 길을 제게 보여주셨거든요. 그분과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제겐 큰 영광이에요.”
너도나도 서둘러 조기유학을 보내고 그것이 관례가 돼버린 한국 음악계의 현실에서, 원주라는 지방 중소도시의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해외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국내파 손열음이 일구어낸 성과는 모든 이들로부터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등장이 더 의미가 깊은 것은 그동안 현악기에 국한되었던 한국 음악을 건반악기로까지 확장시켰다는 데 있다.
이제 그녀의 이름만 듣고도 서둘러 입장권을 예매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이 젊은 음악인은 한시도 자신을 교만하게 두려 하지 않는다.
“아직 땅속에서 자라나야 하는 돌이 땅위로 드러나면 그때부터 돌의 성장은 멈춘다고 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이만한 주목을 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고 아직 더 커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고 또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저는 알아가고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 더 많아요. 계속 공부하면서 더 깎고 다듬고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지어주신 이름 ‘열음’.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탐스럽게 맺어질 열매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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