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20세기 러시아음악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8 [Krystian Zimerman · Boston Symphony Orchestra · Seiji Ozawa]

想像 2021. 1. 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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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i Rachmaninoff, 1873~1943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도 유명하지만, 그 자신이 아주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아주 손이 크고 테크닉도 뛰어나, 힘과 기교를 겸비한 빼어난 연주를 하였다. 그의 피아노 곡들은 당연히 직접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느니, 연주하는데 피아니스트의 엄청난 기량이 필요하다. 관객들에게는 피아노의 능력을 극대화한 명곡이지만,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난곡들이기도 하다. 

 

그는 평생 4개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2번과 3번이 가장 유명하다. 1번은 10대 후반에 작곡했다가 나중에 전면적으로 수정해서, 실질적으로는 이 2번이 첫 번째 협주곡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 받는다.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코프스키에게 배웠으며 그를 멘토로 삼았다. 차이코프스키가 죽었을 때 그를 기려 [위대한 예술가의 회상]이라는 곡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경향을 회고적이라고하기도 하고, 그를 낭만파의 마지막 작곡가라고 하기도 한다. 그는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이 보았을 때는 좀 구닥다리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어쨌던 간에 라흐마니노프는 10대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많은 훌륭한 곡을 쓴다. 피아니스트로의 기량도 뛰어나서 연주자로도 인정받고, 지휘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가 24세 되던 해부터 약 3~4년간 작곡가로 큰 슬럼프를 겪게 된다. 이 협주곡에는 이 당시 라흐마니노프 생애의 단면이 투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협주곡은 작곡가가 경력 초기에 겪었던 좌절, 그로 인한 실의와 고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협주곡을 통해서 그는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나 환희를 향해 나아갔다.

 

라흐마니노프의 나이 25세 되던 해인 1897년 3월 28일, 그의 [교향곡 제1번 d단조(Op.13)]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5년 전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이래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로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던 그는 이 열의 충만한 대작이 자신의 경력에 한 획을 긋는 회심의 역작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 초연은 재앙에 가까운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일단 연주가 전혀 만족스럽지 못 했는데, 일설에 따르면 지휘를 맡은 글라주노프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을 가진 것이 패착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혹평이 쏟아졌고, 그중 ‘5인조’의 일원인 세자르 큐이는 “‘애굽의 재앙’에 관한 교향곡 같다”며 비아냥거렸다. 젊은 작곡가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신경쇠약에까지 걸렸다. 무엇보다 작곡에 자신감을 잃은 그는 그로부터 3년간 거의 아무 곡도 쓰지 못 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러져버렸다. 여러 시간 스스로 질문하고 또 회의해본 결과, 나는 작곡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뿌리 깊은 무감각이 날 점령해 버렸다. 나는 낮 시간의 절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 파괴되어 버린 내 생애를 한탄하면서 보내고 있다.”

 

다만 그동안 다른 방면의 활동까지 위축된 것은 아니었다. 유력한 철도 기업가이자 예술 후원자인 사파 마몬토프가 그에게 자신의 사설 오페라단의 부지휘자 자리를 제안했고, 그는 거기서 평생 친구로 지낼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을 만나기도 했다. 또 1899년에는 런던의 퀸즈홀에서 성공적인 영국 데뷔 공연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혹시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싶어 평소 존경했던 톨스토이를 찾아갔지만, 대문호는 오히려 그가 샬리아핀과 함께 들려준 가곡(베토벤의 교향곡에서 착안한 ‘운명’이라는 곡으로, 그가 ‘교향곡 제1번’의 실패 이후 가까스로 써낸 몇 안 되는 소품 중 하나)에 비판을 가했다. 또 사촌이자 동료 피아니스트였던 나탈리아 사티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 했지만, 러시아 정교회와 그녀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시름을 더했다.

 

결국 그는 수소문 끝에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를 찾아갔다. 달 박사의 처방은 일종의 ‘자기암시 요법’이었는데, 환자에게 가벼운 최면을 걸어놓고 그 귓가에서 필요한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경우에는 “당신은 새로운 협주곡을 씁니다. 그 협주곡은 성공을 거둡니다”라고 읊조리는 식이었다. 이 치료를 3개월 정도 지속하자 효과가 나타났다.

 

자신감을 되찾은 라흐마니노프는 새로운 대작에 도전했다. 그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이 된 이 작품은 1900년 가을에서 1901년 4월 사이에 작곡되었다. 먼저 제2악장과 제3악장이 완성되어 1900년 12월 2일에 작곡가 자신의 독주로 시연되었고, 제1악장은 그 후에 완성되었다. 그 음악에 그가 겪었던 상처, 회한, 몸부림의 환영이 드리운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나아가 그는 자신의 화려한 피아니즘과 장대한 관현악 서법, 풍부한 상상력을 한껏 투입하여 새 희망을 향한 갈망과 의지를 힘차게 노래했다.

 

1901년 11월 9일, 마침내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가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알렉산더 질로티가 지휘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정식 초연되었다. 결과는 대성공!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으로 다시 한 번 ‘글린카 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예를 회복했고, 자신의 재기에 결정적 도움을 준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아울러 그의 재기는 장차 러시아 낭만주의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거인의 나래가 비로소 활짝 펼쳐진 사건이기도 했다.

 

 

제1악장 Moderato

 

이 드라마틱한 악장은 묵직한 피아노 독주로 출발한다. 낮고 어두운 화음과 깊숙한 베이스 음이 교대로 울려 퍼지는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심상은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주요 아이콘인 ‘종소리’이다. 점점 크게 들려오는 그 종소리는 마치 재기를 향한 각성과 의지를 촉구하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한다.

 

일련의 종소리가 정점에 도달한 다음 순간에 현악 파트에서 제1주제가 터져 나온다. 공간을 폭넓게 휩쓸어가는 듯한 이 러시아 풍 선율이 음울하게 흐르는 동안 피아노는 그에 대응하는 장식적인 음들을 연주하는데, 이는 러시아 협주곡의 전통 가운데 하나인 장식 변주의 일환이다. 이 장면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효과적인 통합으로 창출되는 긴밀한 앙상블과 강렬한 이미지는 실로 인상 깊다.

 

이 음울하고 강렬한 흐름이 일단락되면 피아노가 제2주제를 등장시킨다. 이 Eb장조 선율은 음계를 보다 빠르게 오르내리며, 현악 파트의 선율과 어우러져 작품에 서정적 이미지를 더한다. 이어서 장엄한 금관의 화음 연주와 함께 발전부로 진입하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한층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흐름을 타고 격렬한 드라마를 구축해 보인다.

 

재현부 이후의 흐름은 더욱 흥미로운데, 제1주제는 행진곡 풍으로 재등장하고, 제2주제는 길게 늘어져 호른의 나직한 소리로 노래된다. 카덴차는 생략되어 있으며, 종결부는 이완된 분위기에서 출발하여 수수께끼처럼 흐르다가 다시 힘을 모아 강력한 울림으로 막을 내린다.

 

제2악장 Adagio sostenuto

 

이 중간 악장은 여러모로 라흐마니노프의 멘토였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b장조]를 연상시킨다. 일단 시작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에 의한 짧은 경과구가 나타나 앞선 악장의 조성(c단조)에서 본 악장의 조성(E장조)으로 이행하는 수법이 그렇고, 그다음에 주제를 꺼내놓는 플루트 및 클라리넷 솔로가 나타나는 부분도 그러하다. 아울러 악장 중간에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스케르초 풍 섹션이 삽입된 점도 마찬가지이다.

 

이 악장의 느린 부분은 몽환적인 기운으로 가득하여 마치 최면 상태에 빠진 라흐마니노프의 의식의 흐름을 그린 듯하다. 그 흐름 속에서 갖가지 환영들이 스쳐 지나가고, 의식은 때로 그 수면 아래 잠겨 헤매기도, 솟구치려 몸부림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모든 아픔과 고뇌를 뒤로하고 밝은 세계를 향하여 뚜벅뚜벅 나아가는 주인공의 의연한 모습이 떠오르는 듯하다.

 

제3악장 Allegro scherzando

 

먼저 다소 경박한 춤곡 풍 리듬 위에서 진행되는 오케스트라의 전주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화성은 앞선 악장의 E장조에서 본 악장의 c단조로 움직인다. 계속해서 피아노가 현란한 연결구를 연주한 다음 격앙된 제1주제를 펼쳐 놓고, 그로 인한 흐름이 일단락되면 제2주제가 오보에와 비올라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이 러시아 풍 선율은 제1악장의 제2주제와 연계되어 있다.

 

발전부와 재현부를 대단히 긴박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 후에, 마지막 절정부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오케스트라의 격앙된 합주로 제2주제를 커다랗게 부각시킨다. 흡사 승리의 함성 또는 선언처럼 들리는 이 희열 넘치는 클라이맥스를 기점으로 음악은 환한 C장조로 완전히 전환되고, 그 기세를 그대로 몰고 나가 강한 긍정과 확신을 나타내는 C장조 으뜸화음을 장쾌하게 울리면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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