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andsworth School Boys Choir · London Symphony Chorus · London Symphony Orchestra · Sir Colin Davis
Berlioz: Requiem; Symphonie funèbre et triomphale
℗ 1970 Universal International Music B.V.
Released on: 1985-12-03
Requiem, Op. 5 (Grande Messe des Morts)
Louis Hector Berlioz, 1803 ~ 1869
1837년에 발표된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레퀴엠. 정식명칭은 죽은자들을 위한 대미사곡(Grande Messe des morts)이지만 레퀴엠 텍스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레퀴엠이라 부른다.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은 그 이름만 빼면 말러의 ‘천인 교향곡’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낭만파의 최고를 장식하는 화려하고 장엄한 곡 중의 하나였다. 오히려 ‘천인 교향곡’보다도 작품성에 있어서나 규모면에 있어서나 그 위상이 높았는데, 편성에 있어서 오케스트라가 무려 2백여명, 합창, 독창 합해서 210백명, 팀파니만 16대를 추가했고 더구나8명씩 금관악기 주자들을 동서남북으로 배치하게 해 그 어마어마한 규모 때문에 늘 지휘자와 연주자들 사이에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1837년 프랑스 정부는 7월 혁명과 1835년에 발생한 루이 필립왕 암살미수사건 당시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을 계획했는데 베를리오즈에게 이때 쓰일 레퀴엠을 담당하게 했다. 베를리오즈와 친분이 있던 내무장관 아드리안 가스파랑의 배려때문이었는데 베를리오즈은 이곡을 가스파랑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베를리오즈는 시일의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전에 써 놓았던 장엄미사 등을 가미하여 3개월만에 화려하고 장려한 레퀴엠을 완성했지만 추모식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바람에 앵발리드 대성당에서 초연될 예정이던 이곡의 연주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베를리오즈는 위기를 맞았으나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으니 그해 알제리에서 다무레몽이라는 장군이 전사하면서 알제리에서 전사한 다무레몽 장군과 전몰 장병들을 위한 추도식이 계획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베를리오즈는 이 추도식에서 이 곡을 초연하게 하려고 애썼다. 결국 이것이 성사되어서 그해 12월 5일, 앵발리드 대성당에서 육군 주도의 전몰장병 추도식에서 이곡의 초연이 이루어졌다. 이후 1852년과 1867년에 개정판이 출판되기도 했다.
규모는 앞서 말했듯 팀파니 16대를 포함한 2백여 오케스트라 단원, 테너 독창자, 소프라노와 알토 80명, 테너 60명, 베이스 60명 등이다. 초연은 대성공이었지만 제 2곡 ‘진노의 날’ 등에서 굉음이 폭발하는 듯한 관현악 수법이 레퀴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은 긍정적이었고 공연에 참석했던 뭇 시인은 “참으로 아름답고 기이한, 그러면서도 거칠고 충동적이며 애처로운 레퀴엠”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베를리오즈 자신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든 작품이 불태워져도 이 한 곡만큼은 보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선 당시 비난받았던 요소들 때문에 오히려 레퀴엠답지 않은 레퀴엠, 두 얼굴의 레퀴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또한 가장 아름답고 개성있는, 레퀴엠 중의 레퀴엠으로서 감동을 전하고 있다.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은 총 10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1. Requiem - Kyrie
2. Dies Irae - Tuba Mirum
3. Quid Sum Miser
4. Rex Tremendae
5. Quaerens Me
6. Lacrymosa
7. Domine Jesu Christe
8. Hostias
9. Sanctus
10. Agnus D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