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모양이 반달을 닮았다고 해 반월성이라고도 한다. 101년 파사왕때 쌓아 경순왕까지 52명의 왕이 머물던 왕궁이 있던 곳이다.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동궁과 월지와 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었던, 명실공히 신라의 중심이었던 공간이다. 천년 신라의 왕궁이었으니 건물이며 유적이 넘쳐났을 것이다.
월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월성터는 널찍하고 보드라워 도보로 걷기 좋다. 월성에서 첨성대를 바라보면 경주 시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가을에는 핑크뮬리, 해바라기 물결을, 그리고 붉게 물던 계림 숲을 감상할 수 있다.
경주월성 밖 건물터
월성 해자 1호와 2호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월성의 관청 건물 6동이 있던 터로 추정된다. 6동의 건물 중 5동은 해자와 나란한 방향으로 세워졌고, 건물의 위치는 초석으로 표시되어 있다.

경주월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월성의 북쪽과 서쪽엔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다. 해자는 적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 외곽을 둘러 파서 만든 구덩이에 물을 채워 놓은 연못이다. 해자 길이는 550m, 최대 폭은 50m다.





넓고 평평한 월성터
월성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월성터가 나온다. 월성터는 널찍하고 보드라워 도보로 걷기 좋다.




계속중인 발굴작업
현재도 월성터는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아래 사진은 C지구(월성 내 석빙고 주변) 발굴 현장 모습이다.


성벽위에서 바라다 본 풍경
경주 월성 탐방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바로 성벽위. 높은 성벽위에 올라서면 멀리 경주시내는 물론 첨성대와 계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꼭 가봐야할 경주월성의 핵심 포인트.








조선시대 얼음창고, 석빙고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를 들어가면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석비와 입구 이맛돌에 의하면, 조선 영조 14년(1738) 당시 조명겸이 나무로 된 빙고를 돌로 축조하였다는 것과, 4년 뒤에 서쪽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규모나 기법면에서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