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2년 6월 17일, 미국 포트워스에서는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이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그는 준결선에서 제목에 걸맞게 극한의 기교를 요구하는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압도적인 연주로 선보이며 청중과 심사위원단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어지는 결선 무대를 앞두고 많은 이들이 당시 열여덟 살이던 한국 피아니스트의 우승을 빠르게 점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듣게 될 연주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1909년에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성했을 당시 라흐마니노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작품을 쓰겠다’라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그저 하던 대로, 담담하게 한 음 한 음을 오선보에 기입했습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라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압도적인 기술과 예술성이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이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피아니스트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지금. 모두가 이 작품을 오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동안 두드러진 성취를 보여준 이를 우리는 몇 꼽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될 인물은 역시 피아니스트 Vladimir Horowitz입니다. 원작자의 인정을 받은 그의 연주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사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조차 쉽게 내세우기 어려웠던 시절, 어린 임윤찬 또한 Horowitz가 연주하는 '피아노 협주곡 3번'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Horowitz의 전설적인 연주를 반복해 감상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던 그였지만 언젠가 Horowitz 같은 연주를 할 거라는 희망 같은 것은 품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없이 위대한 작품을 언젠가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임윤찬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케스트라가 가볍게 들어서고 이어 피아노가 담담하게 주제 선율을 연주하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시작합니다. 도입부의 주제와 이어지는 음악을 침착하게 연주해낸 임윤찬은 악장의 하이라이트인 카덴차에서 이 연주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하게 알립니다. 그의 선택은 많이 연주되는 긴 카덴차가 아닌 오리지널의 짧은 카덴차. 누군가는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선택이겠지만 배경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남긴 녹음은 물론, Horowitz도 짧은 카덴차를 선택해 연주합니다. 그렇기에 이 짧은 카덴차가 당시의 임윤찬에게는 유일하면서도 올바른 길이었을 것입니다. 부드럽게 시작해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는 카덴차 이후 작품은 주제 선율을 다시 한번 들려준 뒤 마무리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빠른-느린-빠른 템포를 가지고 가는 보통의 협주곡과는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작품 전반을 놓고 봤을 때 앞서 들었던 1악장은 일종의 거대한 도입부로서 기능하고, 이어지는 2악장과 3악장을 개별 악장이 아닌 하나의 음악처럼 들리게끔 작곡가는 설계했습니다. 조금씩 감정을 고조시키는 2악장을 지나 곧바로 시작하는 3악장에 들어서는 오케스트라와 독주자. 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가 써놓은 음표 하나하나를 선명하게 울리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쌓인 감정이 마지막에 끝내 폭발했을 때, 공연장에 있던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연주가 경쟁이 아닌 다른 가치를 보여주었다는 것을.
어쩌면 임윤찬은 이 정도의 관심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날 이후 그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데카 클래식과 전속계약을 맺은 이후 발매한 쇼팽의 '연습곡' 녹음으로 눈부신 주목을 얻은 뒤 차이콥스키의 '사계'와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을 전 세계 콘서트홀에서 선보이며 임윤찬은 그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우리는 바로 이 연주,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실황은 2025년 5월 현재, 유튜브에서 무려 1,7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높은 조회 수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이 연주의 놀라움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출처 : https://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16103&startIndex=0 )
I. Allegro ma non tanto
II. Intermezzo. Adagio
III. Finale. Alla bre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