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리음악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1957]

想像 2014. 7. 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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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1957]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년 12월 8일 ~ 1957년 9월 20일)는 스웨덴계 핀란드 작곡가이다. 음악 활동을 위해 본명인 요한(Johan) 대신 프랑스식 예명 장(Jean)을 사용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요한 루드비그 루네베리의 시처럼 핀란드의 국민성을 대표한다고 여겨진다. 핀란드 최대의 작곡가일 뿐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세계적인 작곡가이다. 그의 작품은 현대 음악풍은 아니지만, 애조를 담은 북유럽의 음악다운 특색을 가지고 있다.



생애


핀란드 헤멘린나 출생. 어려서부터 바이올린과 작곡에 재능을 보였고, 독학으로 몇 곡의 실내악곡을 썼다. 1885년 헬싱키대학 법과에 입학했으나 다음해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헬싱키음악원에서 작곡과 바이올린공부에 전념하였다. 89년 베를린, 이어서 빈에 유학하여 A. 베커·K. 골트마르크·R. 푸크스의 지도를 받았다. 귀국해서 92년부터 헬싱키음악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핀란드의 민족적 대서사시 《칼레발라》를 기초로 하여, 독창·남성합창·관현악을 위한 《쿨레르보교향곡(1892)》을 발표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이어 몇 곡의 관현악곡을 썼는데, 그 중에는 교향시 《전설(En Saga, 1892)》, <투오넬라의 백조>가 포함되어 있는 《레민카이넨 조곡(1893∼95)》 등이 있다. 97년부터는 국가에서 종신연금을 받게 되었고, 《교향곡 제 1 번(1899)》, 교향시 《핀란디아(1899)》 《교향곡 제 2 번(1901)》 《바이올린협주곡 D단조(1903)》 등을 발표하여 지도적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1904년 이후에는 헬싱키 교외 예르벤페에 있는 별장에서 작곡활동에 힘써 《포효라의 딸(1906)》 《교향곡 제3번(1907)》, 현악 4 중주곡 《친근한 목소리(1909)》 《교향곡 제 4 중주곡(1911)》, 교향시 《음유시인(1913)》 등의 걸작이 차례로 탄생하였다. 


그동안 베를린·런던·미국 등을 방문하여 자작곡연주회를 열어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아졌다. 15년 12월 탄생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교향곡 제 5 번》이 초연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 피아노곡 《10개의 바가텔(1912)》 《5개 꽃의 스케치(1916)》, 바이올린과 피아노곡인 《소나티네(1915)》 《5개의 소품(1915)》이 있는데, 비교적 소규모인 것이 많다. 제 1 차세계대전 후에 《교향곡 제 6 번(1923)》 《교향곡 제 7 번(1924)》, 극음악 《템페스트(1926)》, 최후의 걸작이라고 하는 교향시 《타피올라(1925)》를 썼으나, 29년 이후 갑자기 창작활동을 멈추고 30년 동안 공백기간을 가지다가 57년 예르벤페에서 죽었다. 


시벨리우스의 작품 스타일


시벨리우스는 19세기 말 작곡계의 조류를 일부 받아들였지만 음악의 심층적인 구조를 단순화시키려고 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안토닌 드보르작처럼 관용적인 멜로디와 점차적인 발전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페루치오 부조니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영향을 받았고, 1891년의 쿨레르보(Kullervo) 교향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그 영향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소나타 형식을 거부하고 음악적 단편을 발전시키면서 끝에 장엄한 피날레로 이어지는 구성을 그의 작품에 쓰기 시작했다.


시벨리우스는 조성적인 중심이 있는 음악을 썼다. 그는 길게 이어지는 음 하나(‘페달음’이라 한다.)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화성을 선호했다. 그는 “페달 없는 음악은 종종 길을 잃는다”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복잡하지는 않지만 구스타프 말러와 같은 당대 작곡가들의 존경을 받았다. 후에 그는 Olin Downes의 찬사를 받았지만 Virgil Thomson에게는 비판을 받았다.


1925년 이후로 그는 작은 작품들만을 썼고, 여덟 번째 교향곡을 썼지만 폐기했다고 했다. 대편성으로 된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는 교향곡 6번과 7번,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위한 반주 음악, 그리고 교향시 《타피올라》등이 있다. 일차 세계대전이 지나고, 후두암 수술을 받은 뒤 30년의 여생 동안 시벨리우스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피했고 작곡에서도 거의 손을 뗐다.


그는 당대에 서양 고전음악 작곡가로서는 유행에 뒤처진 음악을 썼다. 그의 교향곡은 아직까지도 연주·녹음되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20세기의 교향곡 작곡가 중 하나로 남았다. 하지만 생전에 그는 더 수입이 많은 실내악과 연극을 위한 음악을 더 많이 썼다. 그의 작품을 옹호하는 사람으로는 사이몬 래틀, 로린 마젤, 데이비드 앨런 밀러 등이 있다.


1958년 맨체스터 가디언 지는 다른 작곡가들이 칵테일을 제조하는 동안 시벨리우스는 차갑고 맑은 물을 제공했다는 평으로 그의 말년 작품을 회고했다.


작품


《교향곡 1번 마 단조》, 작품번호 39 (1899/1900)

《교향곡 2번 라 장조》, 작품번호 43 (1902)

《교향곡 3번 다 장조》, 작품번호 52 (1907)

《교향곡 4번 가 단조》, 작품번호 64 (1911)

《교향곡 5번 내림 마 장조》, 작품번호 82 (1915, 1916·1919 개작)

《교향곡 6번 라 단조》, 작품번호 104 (1923)

《교향곡 7번 다 장조》, 작품번호 105 (1924)

《교향곡 8번》 (1929, 완성했지만 시벨리우스 자신이 폐기했다고 1929년 Olin Downes에게 보내는 편지에 언급했다.)

《바이올린 협주곡 라 단조》, 작품번호 47. (1903/1905)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두 개의 세레나데, 작품번호 69. (1912)

《Skogsrået》(나무 요정), 작품번호 14. (1894)

《포흐욜라의 딸》(Pohjolan tytär), 작품번호 49. (1906)

《Öinen ratsastus & auringon nousu》, 작품번호 55. (1909)

오케스트라와 하프를 위한 《시인》(Barden), 작품번호 64. (1913/1914)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Luonnotar》, 작품번호 70. (1913)

《오케아니스》(Aallottaret), 작품번호 73. (1914)

《타피올라》(Tapiola), 작품번호 112. (1926)

《Kung Kristian》, 작품번호 27. (1898)

《Pelléas et Mélisande》와 모음곡, 작품번호 46. (1905)

《Svanevit》 모음곡, 작품번호 54. (1908)

성악, 합창, 관현악을 위한 《템페스트》(Stormen), 작품번호 109. (1925)

《쿨레르보》(Kullervo), 작품번호 7. 소프라노, 바리톤,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교향곡. (1892)

《카렐리아 서곡》(Karelia-alkusoitto), 작품번호 10. (1893)

《카렐리아 모음곡》(Karelia-sarja), 작품번호 11. (1893)

《렘민캐이넨 모음곡》(Lemminkäin-sarja), 작품번호 22. 칼레발라의 전설 네 개에 의함. (1893)

《Vårsång》, 작품번호 16. (1894)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Laulu Lemminkäiselle》, 작품번호 31/1. (1896)

《Sandels》, 작품번호 28.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즉흥곡. (1898)

합창(선택)과 관현악을 위한 《핀란디아》(Finlandia), 작품번호 26. (1899)

낭송, 합창, 관현악을 위한 《Snöfrid》, 작품번호 29. (1899)

낭송, 합창, 관현악을 위한 《울레아 강의 해빙》(Islossningen i Uleå älv), 작품번호 30. (1899)

여성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Livlust/ Gossar och flickor〉, 작품번호 19. (1902)

바리톤, 남성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Tulen synty》, 작품번호 32. (1902/1910)

《Cassazione》, 작품번호 6. (1904/1905)

《Kuolema》(〈Valse Triste〉와 〈Scene med Tranor〉), 작품번호 44. (1904/1906)

《Dance Intermezzo》, 작품번호 45/2. (1904/1907)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Vapautettu kuningatar》, 작품번호 48. (1906)

《벨사자르의 향연》(Belsazar's gästabud), 작품번호 51. 모음곡. (1906)

《판과 에코》(Pan ja Kaiku), 작품번호 53. (1906)

《Dryadi》, 작품번호 45/1 (1910)

《죽음(Kuolema)을 위한 두 개의 소품》, 작품번호 62. (1911)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우리의 조국》(Oma Maa), 작품번호 92. (1918)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지구의 노래》(Jordens sång), 작품번호 93. (1919)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배이뇌의 노래》Väinön virsi, 작품번호 110. (1926)

현을 위한 안단테 페스티보. 유작. (1925/1930)

남성 합창과 현을 위한 《라카스타바》(Rakastava - "연인"), 작품번호 14. (1893. 1911 현과 타악을 위한 곡으로 편곡)

《비시 요울룰라울루아》(Viisi joululaulua), 작품번호 1. 다섯 곡의 크리스마스 캐럴. (1895-1913)

《Porilaisten marssi》 (1900)

《Voces intimae》, 현악 사중주 (1909)

《재게르 행진곡》(Jääkärimarssi) (1915)

6개의 즉흥곡, Op. 5 (1893)

피아노 소나타 F장조, Op. 12 (1893)

10개의 피아노곡, Op. 24

3개의 소나티나, Op. 67 (1912)

No. 1 in F-Sharp단조

No. 2 in E장조

No. 3 in B-Flat단조

5개의 피아노곡 ("The Trees"), Op. 75

스파뉴올로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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