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리음악

생상 [Charles Camille Saint-Saëns, 1835 ~ 1921]

想像 2014. 8. 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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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Camille Saint-Saëns, 1835 ~ 1921


숙모에게서 처음 피아노를 접하고 스타마티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7세 때 피에르 말댕에게 작곡을, 보엘리에게서 오르간을 배웠다. 10세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여 천재적 기량을 발휘 하였다. 1848년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 브누아와 알레비에게 각각 오르간과 작곡을 사사받았다. 1853년 파리 생마리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이 교회에서 즉흥연주를 들은 리스트로부터 <이 시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라고 격찬을 받았다.

1861~65년 니데르메이에르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고 이 때 제자로 메사레, 포레 등이 있었다. 1867년 칸타타 《프로메테우스의 결혼》이 세계박람회 기념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871년 국민음악협회를 설립하여 신작 연주를 장려하였으며 , 이 때 포레, 프랑크, 뒤카, 라벨, 드뷔시 등의 작품을 소개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는 1886년까지 이 협회의 지도자로 있으면서 작곡활동을 하였다. 1888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고독한 방랑자가되어 미국에서 동양까지 여행하였는데, 특히 알제리와 이집트는 그가 마음에 들던 곳으로 1880년 관현악곡《알제리 모음곡》 1891년《아프리카》 1896년 피아노 협주곡《이집트의 풍》 등의 작품을 남겼던 곳이기도 하였다. 1886년 런던 필하모닉 협회의 위촉으로 제3교향곡 《오르간》 을 작곡하고, 1892년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행진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1921년 그가 사랑하는 곳 알제리로 다시 찿아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여러 장르에서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당시 프랑스 음악계의 주류를 이루던 오페라를 13곡 작곡하는 등 힘을 쏟았으나, 오늘날 《삼손과 데릴라》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공연되지 않으며, 빈의 음악형식에 따른 소나타,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교향곡에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그는 독자적인 길을 추구하기보다는 갖가지 요소를 융합하거나 양식에 순응하면서 변화를 주는데 재능이 있었다. 작품의 특징은 고전적인 형식감과 절도를 중시하였으나,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과 색채적 감각이 뛰어나다.

대표작품으로 《삼손과 데릴라》를 포함한 오페라, 5곡의 피아노 협주곡, 3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동물의 사육제(謝肉祭)》를 포함한 관현악곡· 실내악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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