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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여행] 세계 최대급 목조건물이 있는 절《도다이지(東大寺)》

想像 2018. 9. 1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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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년에 지어진 세계 최대급 목조건물이 있는 절 《도다이지(東大寺)》 우리에게는 동대사로 잘 알려진 절로 국보로 지정된 일본 제일의 대불전(大仏殿)과 대불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일본에서 가장 큰 문으로 알려진 난다이몬(南大門) 등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도다이지가 건립한 쇼무천황[聖武天皇, 701~756]은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불교를 통해 국가를 수호하고 국가의 권력을 왕실로 집약시키고자 한 인물이다. 이러한 이유로 도다이지의 금당(金堂, 일명 대불전)도 건립되었다.


대불전(大佛殿)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크기가 높이 46.8m, 정면 57m, 측면 50.5m에 달한다. ‘어떻게 고대에 이런 건물이 지어졌을까’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대불전이 처음 건립되었을 당시에는 중국 당나라의 건축양식을 따랐으나 두 번의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이후 에도시대[江戶時代]에 중국 송(宋)의 건축양식을 추가한 대불양(大佛樣)으로 재건한 게 오늘날의 대불전이다.


이 대불전 안에 안치된 불상이 바로 일본 최대의 불상인 대불(大佛)이다. 대부분의 절이 불사를 행할 경우 전각을 먼저 짓고 불상을 안치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이나, 도다이지의 경우는 대불을 먼저 주조하고 대불의 크기에 맞춰 대불전을 지었으니 대불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불전 안에 들어서면 고개를 쳐들지 않고서는 대불의 형태를 파악하기 힘들다. 대불의 본 명칭은 동조로사나불좌상(銅造盧舎那佛坐像)으로 『화엄경(華厳經)』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중심에 위치하여 대우주의 존재 그 자체를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붙였으나 일명 도다이지 대불로 통칭된다. 


대불 역시 쇼무천황에 의해 주조되었다. 크기가 높이 약 14.7m, 추정 중량 250톤의 아시아 최대의 금동불이었으나 1997년 설악산 신흥사의 대불(18m)이 완성됨에 따라 아시아 최대라는 이름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약 1,200여년 동안 아시아에서 최고의 위엄을 자랑했던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쇼무천황이 743년, "국내의 구리를 모두 다 써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거대한 금동불을 만든다"는 취지를 서술한 <대불 건립 조칙>을 내린 이후 23여년에 걸쳐 조영되었다. 이때 동원된 인원만 매년 260만 3,538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일본의 인구가 약 550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대불 제작은 바야흐로 국민적인 대사업이었던 것 같다. 대불 건립은 당시 일본이 가지고 있던 주조기술의 총 집결체로 나라 안의 모든 구리를 다 사용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일본 왕실의 경제가 쇠락하는 계기가 되어 한동안 일본에서는 다른 금동불은 주조되지 않았다. 어렵게 건립된 대불은 이후 두 번의 화재로 대불전과 함께 소실되어 제작 당시의 모습은 대좌, 소매, 무릎을 중심으로 한 일부분 밖에 남아 있지 않고 상반신은 중세에 제작, 머리 부분은 에도시대에 재건되었다.


이 대불 및 사찰의 건립에는 도래인의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인 양변(良辯) 승정(僧正)은 동대사의 창건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백제계 고승 행기(行基)는 대불건설의 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전국을 동분서주하였다. 대불 주조의 총지휘를 맡은 사람은 백제가 멸망했을 때 백제의 왕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한 국골부(國骨富)의 손자인 구니나카무라지기미마로(國中連公麻呂)이며 또한 대불을 도장할 금박이 부족해졌을 때 백제왕가의 후예인 경복이 무쓰(陸奧) 지방에서 채취한 사금을 보내어 불상의 완성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대불건립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의 대다수가 도래인이었다.


대불전(大仏殿)



대불(大仏)


중문(中門)



가람


鏡池



난다이몬(南大門)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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