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여행] 청나라의 황실 정원이자 동양의 베르사유, 원명원(圆明园)

이화원이 중국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중국의 정원이라면 그러한 중국의 거대한 힘이 서양세력에 의해 파괴되고 짓밟혔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바로 원명원이다.


원명원은 1709년 강희재 때 건축되기 시작돼 건륭제까지 6대 150년에 걸쳐 건축한 ‘정원 중의 정원(万園之園)’이라 불리던 청대 황실의 정원이다. 320ha의 넓이에 크고 작은 수많은 인공호수를 파고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곳인 원명원에는 중국 전통건물들과 함께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은 유럽식 건축물인 서양루(西洋樓)를 지어 놓아 동양과 서양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 속 화려했던 시간이 지나고 서양세력이 중국을 농락하며 대륙의 자존심을 짓밟았을 때 원명원은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이화원과 함께 폐허로 변했다. 1860년 10월 중국을 상대로 3년에 걸쳐 제2차 아편전쟁을 치른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진귀한 보물이 그득하게 쌓인 원명원을 약탈하고 원명원에 대포를 쏘고 불을 질렀다. 총면적 350만㎡인 원명원은 이틀을 태워도 다 태우지 못했다고 하는데, 당시 기록에 따르면 연기가 해를 가려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고 한다. 그 뒤 서태후의 사치스러움으로 인해 군비까지 빼돌려져 복구된 이화원은 다행히도 그 화려함을 되찾았지만 원명원은 그렇지 못했고 ‘아픈 역사를 잊을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각오와 함께 지금까지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한 채 폐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2005년 이후 폐허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원명원에 대한 복구를 놓고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역사교육장소로써 원명원의 폐허는 복구돼선 안 된다’와 ‘예전의 화려한 모습을 복구해 중국문화의 웅장함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는 두 가지 논리가 대립하기도 했다. 결국은 호수와 주변 전통건물 일부만을 복구한 채 폐허의 모습 그대로를 공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 복원에는 전통적인 것은 살려도 서양 것은 복원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자존심과 영국과 프랑스가 약탈해 간 문화재의 반환 없이 이뤄지는 복원은 반쪽짜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일면 담겨 있다.


원명원은 고궁(자금성)의 다섯 배의 넓이를 자랑한다. 290ha인 이화원보다 30ha 이상이 큰 중국의 최대 정원이기도 하다. 황제의 ‘강남의 빼어난 경관을 옮겨올 수 있다는 믿음’은 분지지형인 베이징 고궁 서북부의 넓은 땅에 원명원을 건축하게 했다. 절반 이상의 넓이를 크고 작은 인공호수들로 만들었으며 1000여 개의 궁전과 100여 개의 원림경관을 갖춘 거대한 정원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수많은 황제들이 1년의 절반 이상씩 머물며 조정업무를 보던 실질적인 제2의 황궁이었으며 제의와 경전, 국사집행 등 대부분의 의식이 원명원에서 행해졌다.


인공호수를 파면서 나온 흙들은 주변에 낮은 구릉들을 만들었고, 이러한 구릉들은 시야를 적절히 가림으로써 이동에 따라 다른 경관을 보이게 해 지루함을 없애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중국의 원림법칙을 적용시켰다. 지금은 비록 폐허가 돼 있는 곳이지만 황제가 다니던 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수없이 펼쳐지는 크고 작은 선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원명루 입장료는 서양루유적지와 원명원전경모형관 입장이 가능한 통합티켓이 25위안이다. 학생 및 노인은 10위안. 



아래 사진은 원명원 안내도. 엄청나게 넓어 전부를 다 돌아 보려면 하루가 다 지나갈 것 같다.  원명원은 원명원, 창춘원, 기춘원을 총칭하는데 보통 장춘원의 서양루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이 메인이다. 



정문으로 해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구역이 기춘원이다. 여러개의 호수를 넓디 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공원 곳곳에 중국식 건축물들과 교량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어 옛 기춘원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아래사진은 기춘원과 만나는 창춘원 남단의 풍경. 봄을 맞아 매화꽃 향기가 가득한 정원내 풍경이 너무 좋다. 



 창춘원 남단에서 북단에 있는 서양루유적지까지는 거리가 멀어 카트를 타고 이동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매일 관광을 하는 관광객입장에서는 걸어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8위안(편도)을 주고 카트 승차권을 사서 서양류유적지까지 편하게 이동했다.



카트는 창춘원 담을 끼고 한참을 달린다. 그리고 서양루 유적지 앞에 내려준다. 서양루 유적지 앞에 내리면 검표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정문 매표에서 구입한 티켓을 보여주고 그냥 입장하면 된다.



서양루 유적지에 들어서면 우선 정교한 조각이 들어간 기둥과 석재들이 부서진 체 너부러져 있다. 폐허로 변한 서양루지만 그 화려했던 옛 모습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그나마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는 미궁(미로 정원)은 옛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어 과거 '동양의 베르사이유'라고 불리었던 원명원의 화려했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원명원의 서양루유적지에 페허가 되어 남아 있는 옛 건물터와 기둥, 석재들



아래사진은 청의 건륭제가 외국인 선교사에게 명하여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하게 짓도록 했다는 해안당(海晏堂) 유적지 모습



아래사진은 현재 모습과 해안당 원래 모습 복원도



원명원 전람관에는 원명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전시관 밖에는 12마리의 동물상이 차례로 입에서 물을 뿜으면서 매시 시간을 알려 당시 중국과 서양 문화가 결합한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되고 있는 시계분수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서양루 유적지를 보고 후문을 통해 나와서는 원명원전경모형관으로 이동한다. 



원명원전경모형관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난 크기의 원명원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원명원이 워낙 큰 규모다 보니 모형도 엄청 크다. 아쉬었던 것은 모형의 질이 좀 떨어져 (조잡한 느낌) 원명원의 옛 모습을 제대로 느끼기엔 한계가 있었다.



원명원전경모형관을 보고 나서는 다시 정문 입구까지 호수를 따라 걸어 나왔다. 해질 무릎 원명원은 너무나 조용하고 한적했지만 베이징의 또 다른 면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보통 베이징 관광시 너무나 유명한 이화원을 많이들 들리지만 원명원(圆明园)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화원 관광을 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꼭 한번은 들릴 필요가 있는 것이 이 원명원(圆明园)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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