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20세기 러시아음악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1번, Op.1 [ Krystian Zimerman · Boston Symphony Orchestra · Seiji Ozawa]

想像 2021. 1. 1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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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i Rachmaninoff, 1873~1943

Piano Concerto No.1 in F sharp minor, Op.1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한 작곡가들 가운데 작품 번호 1번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사람은 아마도 라흐마니노프가 유일할 것이다. 더군다나 실내악이나 독주곡도 아니고 관현악에 대한 이해와 피아노에 대한 노련함을 수반해야 하는 피아노 협주곡을 자신의 첫 출판작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10대의 라흐마니노프는 세상을 향해 포효하듯 피아노 협주곡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에 앞장섰다.

 

작곡가는 학생 시절이던 1890년(불과 17세)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했는데, 특히 2악장과 3악장은 불과 이틀 반 만에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가히 한 천재의 웅비(雄飛)라고 말할 수 있는 작업 속도와 음악적 숙련도가 아닐 수 없다.

 

1892년 3월 17일에 열린 협주곡 초연은 대단한 화제를 일으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피아노 솔로를 맡고 콘서바토리의 교수인 바실리 사포노프가 지휘를 했는데, 사포노프는 이 작품에 대해 수정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확신에 차 있던 젊은 작곡가는 완강하게 거부하며 오히려 지휘자의 템포를 비판했다. 만약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지 않고 차이콥스키의 뒤를 잇는 적자로서의 과감한 경력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학생으로서 이러한 뻔뻔스러움은 결코 용서되지 않았을 것이다.

 

차이콥스키가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번]에 가해진 비판을 처음에는 강력하게 거부했던 것을 그를 숭배했던 라흐마니노프 또한 그대로 답습한 듯한데, 작곡한 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개정 작업을 한 것 또한 닮아 있어 이채로움을 더한다. 게다가 차이콥스키가 자신의 협주곡을 옹호해준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뷜로에게 헌정했듯, 라흐마니노프 또한 자신의 동료이자 선배인 위대한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질로티에게 이 작품을 헌정했다.

 

이후 사포노프는 모스크바의 출판업자인 구테일에게 라흐마니노프를 추천하여 젊은 작곡가의 오페라인 [알레코]와 저 유명한 [전주곡 C샤프 단조]를 비롯한 몇몇 피아노 작품들,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출판하게 된다. 그러나 24세인 1897년에 교향곡 1번을 초연한 뒤 3년 동안 슬럼프에 빠졌지만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하여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되었고 이후 1909년 매머드급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작곡하여 피아노 협주곡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그러나 보통의 완벽주의자들이 자신이 어린 시절에 작곡한 작품들을 끊임없이 개작했던 것과는 달리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처녀작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실제로 자신이 작곡과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해 성숙한 지식을 습득한다면 이 초기 협주곡도 매우 훌륭해질 수 있다고 1908년경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 바 있는데, 아마도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는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작품 번호 1번을 개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라흐마니노프에게 있어서 삶의 전환점은 바로 1917년 9월,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를 영원히 떠나기 불과 몇 주 전에 해당한다.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에 은둔하고 있던 그는 길거리에서 들리는 총소리를 무시한 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작곡함과 동시에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개작했고, 스톡홀름으로 가는 배를 타기 바로 하루 전에 새로운 버전의 악보를 구테일에게 보냈다.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연민, 혹은 새로운 땅으로 향하는 불안감과 도전의식이 작용했을까,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음악적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꺼내들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구성하여 미래를 향한 발판으로 삼고자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했다.

 

그는 자신의 첫 출판 작품에 과감한 수정과 대담한 삭제를 가하여 원곡에 담긴 젊은 기운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고스란히 유지한 채 보다 섬세하고 정제된 작품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도 개정판에서 대단히 까다롭고 거대하게 스케일이 커진 첫 악장 카덴차에서 서두의 팡파르와 두 옥타브의 화려한 장식적 악구를 포함한 모든 주제가 하나로 통합된 모습이 특히 그러하다. 그리고 2악장에서는 텍스추어가 얇아진 대신 화성은 풍부해졌는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슬라브적인 노스탤지어가 깃들어있는 쇼팽적인 느낌이 배가되었다. 가장 많은 수정이 이루어진 부분은 3악장으로, 거의 모든 부분이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이 3악장에는 그의 [전주곡집 Op.32]나 [회화적 연습곡 Op.39]를 연상시키는 복잡한 화성과 고도의 테크닉, 작곡가 특유의 어법 등이 고스란히 담기게 되었다.

 

미국으로 건너온 라흐마니노프는 1919년 1월 뉴욕 카네기 홀에서 새로운 판본에 의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모데스트 알츠슐러가 지휘하는 러시아 심포니 소사이어티와 함께 초연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역시 카네기 홀에서 아르투르 보단츠키가 지휘하는 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했다. 그는 이 1번 협주곡에 대해 “개정을 통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작품 안에는 젊음의 생기가 가득 담겨 있고 훨씬 더 원활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군요. 미국에서 내가 1번 협주곡을 연주하겠다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얼굴을 보면 오로지 2번과 3번 협주곡을 연주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아직까지도 1번 협주곡은 레어 레퍼토리로 남아있지만 진지하게 들어본다면 아름답고 강력한 음악적 메시지를 담고자 한 젊은 천재의 패기와 이를 위대한 유산으로 남기기 위한 중견 작곡가의 간절한 소망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의 형식과 분위기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1악장 첫 도입부에서 오케스트라 총주와 피아노의 옥타브 하강 패시지, 카덴차의 주제와 진행 방법은 자신이 그토록 칭송했던 그리그의 협주곡과 너무나 닮아 있다. 또한 차이콥스키로부터의 영향 또한 찾아볼 수 있는데, 첫 대목에서의 그 ‘운명을 향한 노크’로 일컬어지는 금관 모티브로 최초의 불꽃을 일으킨 뒤 흘러내리는 듯한 멜로디가 제시되는 모습이 그러하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탁월한 경력을 쌓아나가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대중 앞에서 연주하지 않았고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과 더불어 녹음 또한 하지 않았다.

 

 

1악장 : Vivace

 

1악장은 악장기호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라흐마니노프가 즐겨 사용했던 폭넓은 아치형의 구조로서, 제시부는 건강하고 서정적이며 매력적인 아이디어들이 넘쳐흐르다가 오케스트라 총주와 함께 처음의 피아노 옥타브로 되돌아온다. 2주제 바로 앞에 작은 카덴차와 보다 느리게(meno mosso)로 이어져 있는 것, 전개부 앞에는 연주자의 재량에 맡겨진 포르티시모 트릴이 강렬한 효과를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발전부는 한층 나이를 먹은 작곡가의 위대한 섬세함이 돋보이는 환상적인 간주곡 형식으로서, 모든 주제들로부터의 모티브들이 서로 미묘한 대화를 나눈다. 이 악장은 명백한 소나타 형식으로서 동경하는 듯한 주제로 돌아오며 대단히 긴 길이의 피아노 파트가 질서정연하게 소나타 형식으로 재현됨을 알리고, 악장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하는 전통적인 솔로 카덴차가 상쾌한 더블 옥타브로 시작된다. 낭랑하고 호흡이 긴 리스트적인 불꽃과 작곡가 특유의 노스탤지어를 머금은 이 긴 카덴차는, 짧고 화려한 결말에 앞서 이 악장의 주제를 마무리한다.

 

2악장 : Andante

 

2악장은 다른 두 개의 악장에 비해 비교적 개작이 덜 가해졌다. 라흐마니노프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생각해낸 빛을 발하는 그 순수함과 싱싱한 리리시즘(lyricism, 예술적 표현의 서정성)에 만족해했기 때문이다. 시작부는 이전 악장을 모방한 혼과 목관 프레이즈에 의해 첫 악장과 밀접하게 관련지어져 있는데, 여기서 피아노 솔로에 의해 길고 변덕스러운 주제가 등장한다. 중간 부분의 열정적인 대목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조용하고 음울하다. 2악장과 3악장을 매끄럽게 이어나가는 대신 라흐마니노프는 찰나와 같은 휴지부를 두었는데, 전 악장의 감미로운 마지막 D장조에 뒤이어 느닷없이 날카로운 화음이 등장하며 피날레 악장은 질주하기 시작한다.

 

3악장 : Allegro vivace

 

3악장은 라흐마니노프가 그동안 익혀왔던 명료한 오케스트라 스코어링(scoring, 모음 악보의 형태로 악곡을 쓰는 일)과 불꽃을 튀기는 고도의 피아노 테크닉을 총동원하여, 왈츠풍의 작고 조증적((躁症的)인 단편들을 음표들의 폭풍으로 몰아넣는다. 중심 에피소드는 Andante ma non troppo로서 허세를 부리지 않는 E플랫 장조의 작은 음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바이올린 파트와 솔리스트 사이에 주고받는 응답이 매력적이다. 초판본에서 이 주제는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포르테로 돌아와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거대한 음조로 다루어지는데, 나이가 들고 현명해진 작곡가는 작은 음조는 그대로 작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빠르고 맹렬한 외적 단면들 사이에 꿈꾸는 듯한 에피소드로 남겨두었다. 진행의 명료함을 위해 라흐마니노프는 이후의 패시지들 가운데 여러 부분을 잘라냈고, 그 덕분에 음악은 단조로움과 애매함 없이 마지막을 향해 돌진하며 화려하게 끝을 맺는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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