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문학작품

[윤동주 영상시집] 참회록 X 자화상

想像 2016. 3. 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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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尹東柱,1917~1945)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이십사년일개월(滿二十四年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자화상(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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