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드뷔시·라벨·포레·사티

드뷔시 : 어린이의 세계(Children’s corner),L.113 [Samson François]

想像 2023. 1. 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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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ren's Corner, CD 119, L. 113

Claude Debussy, 1862~1918


Samson François Debussy: Children's Corner, Estampes & Suite bergamasque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드뷔시는 사교계에 나가기보단 상상의 세계에 잠기기 좋아했으며, 나이 먹어서도 소년처럼 천진난만한 성품이 은근히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공상을 <어린이 세계>에 고스란히 담았다. 사랑스러운 딸 슈슈(Chou-Chou)에게 줄 선물로 작곡한 6가지 모음곡이다. 딸의 동화적인 상상력을 키워주고 싶었으리라고 추측된다.

 

<어린이>가 붙은 모음곡들은 여기저기 많지만, 드뷔시의 <어린이 세계>는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린이의 세계다. 드뷔시는 그저 관찰에 지나지 않고, 어린이가 본 세계에 동화되고자 한다. 이 점에서 또 슈만의 <어린이 정경>과 약간 다르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아련하게 회상하는 부분에 주안점을 둔다면, 드뷔시가 작곡한 어린이 세계는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어른이 어린이의 동심에 접근해서 어린이들만이 가진 세계를 느끼는 게 목적이다. 회상의 정서보다는 현재 함께 호흡하는 느낌?

 

보통 어린이용 작품은 교육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그에 비해 드뷔시의 어린이의 세계는 은유적이고 독립적이라 기존 어린이를 다룬 곡과 비교하면 상당히 독특한 구성이다. 곡 제목을 되뇌면서 명상하면 어떤 이미지가 영상처럼 떠오른다. 어린이의 영역을 시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즉, 어린이가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둔 연습곡으로 작곡된 게 아니라는 점에 가치가 있다. Corner라는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어린이의 공간을 엿보는 곡들이다. 어린이와 한 세계에서 호흡하는 어른이 어린이를 관찰하다가 그 영역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작품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유머러스하고 환상적이며 매력이 가득한 곡이다. 

 

프랑스인인 드뷔시가 모음곡들의 원제를 모두 영어로 적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을 높이는 분위기가 강했기에, 프랑스인의 숭상 풍조를 희화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슈슈의 어머니 엠마 클로디스는 아기를 영국 유모에게 맡겼으며, 영국제 판화들로 방을 치장했다.

 

슈슈, 즉 클로드 엠마는 당시 내연녀(..)였던 엠마 클로디스와의 관계에서 생긴 딸이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둘 다 배우자와 관계를 정리하고 잠시간 안정감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이 곡을 헌정받은 클로드 엠마는 아버지를 닮아 영특하고 음악적 재능이 보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드뷔시는 이 곡을 완성한 지 10년 후인 1918년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클로드 엠마도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서 아버지를 따라갔으며, 곡만 남았다 ㅠ_ㅠ 소녀로 남은 슈슈에게 헌정한 곡인지라 더 의미가 있다.

 

클로드 드뷔시와 클로드 엠마

 

제1곡 : 기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Doctor Gradus ad Parnassum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박사. 단순하고 지루한 고전파 연습곡은 얼른 나가 놀고 싶은 아이에게는 지겹기 짝이 없다. 싫증이 난 어린 아이가 정말 따분한 기분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위트 넘치게 묘사했다! 반복적인 클레멘티 연습곡의 운지법을 익혀야 하는 아이는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아이의 기분을 연상할 수 있다. 빠른 온음계의 곡에 지친 어린이의 반항을 상상하면서 들으면 더 공감이 간다.

 

 

제2곡 : 코끼리의 자장가 Jimbo’s Lullaby

 

장난감 코끼리를 위한 묵직한 리듬의 곡이다. 코끼리 장난감과 함께 침실에 누운 아이는 느릿느릿한 자장가와 함께 점점 잠에 빠져든다. 상냥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어르고 달래면서 자장가를 불러주고 커다란 코끼리를 재우려 하던 아이는 자신이 먼저 푸근한 꿈나라로 향한다. 아이가 온순한 코끼리와 함께 꿈속을 노니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제3곡 :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 Serenade for the Doll

 

어린 소녀가 자신이 아끼는 인형에게 불러주는 노래다. 동그란 눈, 예쁜 미소를 띤 입술, 귀여운 얼굴. 전형적인 여자아이 인형이다. 사랑스러운 인형에 대한 아이의 순수한 애정과, 사랑스러운 인형에 대한 기쁨의 찬사가 느껴진다. 동심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곡이다. 스페인 풍의 세레나데로 구성됐다. 이 모음곡 시리즈 중 가장 먼저 발표된 곡이다. 이 곡의 반응을 본 이후, 5곡을 추가했다고 한다.

 

 

제4곡 : 눈송이가 춤춘다 The Snow is dancing

 

추운 겨울날, 따뜻한 방 안에서 놀던 아이가 창 밖에서 눈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잿빛 하늘에서 쉴 틈 없이 날아다니는 눈발. 아이는 창문으로 다가가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새하얀 눈의 목소리를 듣는다. 춤추듯이 바람에 점점 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은 쓸쓸하고 허전하다. 외로움에 젖은 아이의 마음을 일정한 반복의 오스티나토 기법의 음률과 스타카토 연타와 신비로운 페달링으로 영묘하게 묘사했다.

 

 

제5곡 : 어린 양치기 The little Shepherd

 

장난감 양치기 목동이 아주 자그마한 뿔피리를 분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는 작은 양치기 장난감을 보면서도 너른 초원의 푸르름과 높다랗고 말간 하늘이 맞닿는 풍경을 떠올리고, 뭉게구름처럼 모여드는 양떼들과, 촉촉하고 향긋한 풀 내음, 서정적인 뿔삐리의 노래를 듣는다. 잔잔한 미풍이 떠오르는 고즈넉하고 전원적인 곡이다. 어린이의 환상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제6곡 :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Golliwog’s Cake-walk

 

가장 유명한 곡. 흑인 어릿광대 인형의 춤이다. 케이크워크란 플로리다 흑인들에게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유행한 재즈 요소의 래그타임에 맞춘 춤으로, 잘 추는 사람에게 데코레이션 케이크를 선물로 주는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뒤엉킨 곱슬머리, 튀어나올 듯 커다란 눈과 두꺼운 입술, 커다란 골격. 자세가 비뚤어진 기괴한 인형은 걷기만 해도 익살스럽다. 인형은 타악기를 두들기고 몸을 으쓱거리며 아메리카 니그로의 춤을 춘다. 육중한 몸을 흔들면서 춤추는 모습은 누가 봐도 우스꽝스럽다. 둔한 인형은 어긋난 리듬으로 뒤뚱뒤뚱 움직여대고, 아이는 이 언밸런스한 제스처를 보면서 정말 우습다고 느낀다. 리드미컬하고 다소 그로테스크한 이 곡은 강약의 조화와 재즈 요소가 유쾌하게 드러난다. 춤곡으로도 자주 쓰이고 가장 흔히 연주되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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